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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Aug 29. 2024

사랑하는 만큼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사랑





          

30대가 되어 나에게 사랑은 여러 형태를 갖춘다. 20대 눈물짓는 사랑보다 더 깊고 더 무거운 형태. 그 사랑은 나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다.      



언제 내 곁에서 사라질지 몰라서 불안했던 존재가 있다. 첫 번째는 할머니였고 두 번째는 반려견이다. 생각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내 곁에서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쉴 수 없게 만들었던 존재.      

그랬던 첫 번째 존재인 할머니는 2022년 6월 내 곁, 우리의 곁에서 할아버지의 곁으로 가셨다. ‘가셨다.’라는 표현이 맞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다녀가셨다.’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다녀가셨다, 다녀가셨다, 다녀가셨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다녀갈 테고 우리는 다시 그곳에서 만날 것만 같아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하늘이 무너져도 이 감정보다 덜 두려울 것 같았다. 슬픈 감정을 넘어서서 두려운 감정이었다. 할머니가 없는 일상을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갈 때 반겨줄 나의 할머니가 없으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용기가 생길까. 무엇보다 ‘할매’라고 부를 대상이 사라진다면 나에게 ‘할매’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 내가 울 때 ‘아라야 울지 마’라고 나긋한 목소리로 위로해 줄, 아니 목소리 자체로 나에게 위로되는 존재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이번 생을 살아가며 느낀 가장 큰 사랑. 할머니 생각을 하며 글을 쓸 때마다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며 문장을 이어 나간다. 슬프지만 경이롭다. 나는 정말 큰 사랑을 받았구나. 그리고 그 사랑을 일상에서 떠올리며 살아가겠구나.     



두 번째 존재인 반려견 메리.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의 짝꿍, 섬망 증세를 보이면서도 메리를 찾던 할머니. 그만큼 우리 가족에게 메리의 존재는 커졌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존재가 되었다. 2014년, 할머니댁 마당에서 메리를 처음 만났다. 요크셔테리어와 몰티즈의 믹스견으로 보였던 메리. 갈색빛을 띄는 털, 갈색 눈동자, 산처럼 쫑긋 솟은 귀. 눈물 자국이 심했던 그냥 할머니댁의 강아지였는데 지금은 가장 우선순위인 존재가 되었다. 그런 강아지와 11년째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6개월 뒤 나는 결혼을 했고 신혼집에 메리를 데려왔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낸 2024년 7월부터 노화로 인하여 메리의 시력이 저하되고 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토록 받아들이기 힘들 수가 있을까. 하루에도 두세 번씩 울었다. 메리가 벽에 부딪히고 의자에 부딪히고 매일 마시던 물그릇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관리가 부족했던 건가 자책하게 됐다. 산책을 하다가도 턱을 넘지 못하는 메리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파트 단지에서 엉엉 울며 집으로 올라가서 명휘에게 안겨서 또다시 서럽게 울었다. 서럽고 두려웠다. 할머니를 떠나보냈을 때와 같은 먹먹함이 나를 덮쳤다. 순식간에 밀려든 감정이라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두려움이란 웅덩이에 깊고 깊게 빠져들었다. 나 자신보다 더 부지런히 챙겼던 반려견이기에 또 우리가 없던 할머니의 옆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아이이기에 슬픔이 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노화한 만큼 우리와 함께한 세월이 길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지금도 시간은 가고 있으니까 남은 시간을 더 귀하게 보내야지. 그래도 기꺼이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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