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사랑을 배웠다.
내 반려견 메리가 시력을 잃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고 짧은 시간 동안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다. 7월 26일, 메리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접종하러 갔다. 최근 메리의 행동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며 혹시 시력이 나빠진 건 아닌가 여쭈어보았다. 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슬픈 예감은 두어 번쯤 틀려도 좋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간단한 눈 검사를 통해 빛에 대한 반응 속도가 느려졌다고 말씀하셨다. 시력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아마도 백내장 초기에 핵경화증까지 함께 온 것 같다고 하시며 백내장 지연제를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조금 지켜본 후 변화가 없으면 소견서를 작성해 줄 테니 안과 전문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이 쉴 날이 없었다. 백내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강아지 관련한 카페에 가입을 하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고 또 찾았다. 백내장 초기에는 시력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내용, 백내장은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 등. 백내장 초기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수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빛에 대한 반응 속도만 다소 느려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다음 나의 고민은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는가’였다. 반려동물 백내장 수술은 최소 11살인 우리 메리처럼 노견에게는 위험 부담이 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백내장 수술을 한다고 다시 잘 보인다는 보장도 없다고 한다. 고민에 고민을 하며 2주란 시간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메리의 시력이 점점 더 저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안과 전문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단 확신이 들어서 예약을 했고 병원에 다녀왔다.
8월 16일, 안과 전문 병원에 가면 총 3단계의 검사를 거쳐 시력 저하의 원인을 찾는다. 1단계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면 2단계로, 2단계에서도 찾지 못한다면 3단계로. 우선 1단계 검사를 진행했다. 일부는 보호자가 보이는 곳에서 검사를 했다.
몇 가지의 검사를 거친 후, 수의사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얘 안 보여요.”
바로 되물었다.
“하나도 안 보인단 말씀이세요?”
그리고 메리의 이름 밑에 빨간색의 ‘Not’이 떴다. 눈물이 쏟아졌다.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다. 내가 울면 검사받고 있는 메리가 더 불안할 것 같아서.
메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바로 문에 박았다. 보인다면 목표물을 보고 걸어가는데 메리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메리가 실명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러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슬펐다. 슬피 우는 나를 달래주는 명휘의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래서 나는 더 슬펐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받은 만큼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먼저 깨달았다.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지금의 나와 메리의 관계를 다시 택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 슬프다.
물론 동물은 시각적인 면보다 청각, 후각에 더 의존을 한다지만 메리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눈을 마주치는 안정감을 나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슬펐고, 슬프다.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혹시 메리가 통증을 느끼고 있진 않은가요?” 동공의 움직임도 좋고 안압도 정상이라고 통증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늘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시력보다 통증의 유무가 제일 궁금했다. 아프지만 않으면 됐다. 그다음 문제는 언니가 맞닥쳐서 헤쳐나갈 테니까.
메리의 실명 사실이 확실해지고 메리의 변화에 더 집중하려고 애썼다. 안방 매트리스 생활에서 거실 토퍼 생활로 바꾸고 모서리마다 보리차 티백을 붙였다. 냄새 맡고 부딪히지 말라고. 다행히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안방 매트리스 테두리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았다. 혹시나 메리가 올라가서 떨어지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충격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력을 잃고 방향 감각을 잃은 메리가 배변 실수를 한다. 그래서 자기 전에는 30장 가까이 되는 패드를 메리가 실수할 만한 곳곳에 깔아 둔다. 그러면 메리도 나도 마음 편안히 밤을 보낼 수 있다.
내가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가면 메리는 욕실 발매트에 앉아있거나 엎드려 있다. 그런데 시력을 잃고 한동안 발매트 위에 있는 메리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오늘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메락 발매트에 엎드려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내가 그리워하는 날과 같이. 메리가 시력을 잃었지만 나는 그로 인해 많이 배운다. 늘 함께할 거라고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 세상에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매 순간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며 슬픔에 빠지기 일쑤인데 그러지 않기로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그 이유는 시력을 잃은 메리도 나에게는 하나뿐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체이니까, 또 시력을 잃은 메리 덕분에 나는 성장하고 또 깨닫게 될 거니까. 슬프니까 슬퍼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슬퍼지려 하기 전에 방향을 틀어버리자.
사랑하는 메리야, 언니가 지켜줄게. 메리야, 언니 마음은 메리가 대학 갈 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언니의 곁에 있는 건데, 언니의 욕심이라면 그냥 메리가 아프지 않은 날까지 편안히 있을 수 있을 때까지만 언니 옆에 있어 주라. 부탁이야. 소중한 나의 메리야. 덕분에 사랑을 배운다. 고맙고 사랑해.
이런 생각을 했다. 하늘에서 할머니가, 나만큼이나 메리를 끔찍이 여기는 할머니가 메리의 눈을 더 큰 지병과 맞바꾼 게 아닐까 하는. 감사한 생각과 마음만 가지기로 하자. 8월은 볕이 너무 뜨거워서 편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선선한 가을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