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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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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Oct 22. 2017

<17> 나의 동네

 나의 동네를 사랑하는 이유 

대만대학교 앞, 공관역 근처는 참 살기 좋은 <동네>다.

<동네>는 쉬이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단순히 주거지, 살고 있는 곳을 넘어 애착과 추억이 깃든 곳이어야 동네가 될 수 있다. 좋아하는 단골집, 매일 반복되지만 질리지 않는 풍경, 나만 아는 지름길과 산책로가 있는 곳.

어떤 곳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동네가 되지 못하지만 어떤 곳은 겨우 세 밤을 지내고도 동네라 부르고 싶어지기도 한다. 


공관역은 주말이면 타이페이 각지에서 몰려드는 맛집이 가득한 곳이다. 동시에 매주 플리마켓을 여는 부지런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귀여운 토끼를 기르는 이웃도 있고, 운전자들을 위해 밤에도 눈에 띄는 형광 페인트를 직접 칠하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강변을 따라 있는 산책로도 훌륭하고 작지만 실속있는 야시장도 있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분위기이다. 주변에 대학교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가, 이 동네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어딘가 첫사랑의 향기가 난다. 낡고 낮은 건물들과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울창한 나무들 , 있는 그대로 충분한 소박한 골목들과 나란히 선 카페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곳의 극단적인 날씨마저 꼭 첫사랑을 앓을 때의 마음같다. 오늘은 쨍하니 맑았다가도 내일이면 폭풍우가 치는 날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일던 그리움 같은 빗줄기들. 이 말도 안 되는 날씨가, 말도 안 되었던 그 모든 날들같다. 


공관역 카페들은 그 시절 일기같다. 향수에 젖게 하는 노오란 톤의 불빛들은 오랜 날들을 꺼낸다.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거짓이라고 치부하지 않던 날들. 고개를 끄덕일 때 괴롭지 않던 날들. 의심하지도 그렇다고 쉽게 믿어버리지도 않던 날들. 지금은 애초에 있었을까싶은 그런 날들. 그런 날들을 꺼내온다. 

학교의 교실 한 구석같은 인테리어, 자기 전 일기를 쓰기 위해 잠깐 켰던 스탠드 같은 전등들. 

나 자신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던 시절에 잔뜩 모았던 온갖 포스터들. 


오늘도 골목을 따라 이웃들의 테라스에 난 식물들을 보고 있자면, 카페에 앉아 노오란 불빛들을 맞고 있자면, 이미 밤이 찾아온 하늘을 바라보자면, 어딘가 청춘의 냄새가 난다. 첫사랑의 향기가 난다. 영원히 젊을 수 있을 것같은 이 동네. 이 동네에 살 수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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