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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Aug 12. 2020

러블리 커플이 사는 도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늦은 오후의 세인트 마틴 성당 앞, 넓은 광장은 한적했다. 광장에 내려앉은 오후의 고즈넉함이 좋아서, 돌바닥에 앉아 코블 스톤의 차갑고도 거친 결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자그레브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짐만 내려놓고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던 중이었다. '이렇게 단박에 좋아질 거면서'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여행지로서 크로아티아 Croatia 가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점의 여행 에세이 코너에서 제목에 "크로아티아"가 들어간 책이 단 한 권뿐이던 그런 시절. 크로아티아, 낯선 그 이름이 예뻐서 그저 호기심으로 그 책을 샀더랬다. 밤마다 천천히 한 챕터씩 한 폭의 투명한 수채화 같던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름만큼 풍경도 사람들도 참 예쁜 곳이겠구나 상상했었다. 조금 신기했던 감정은, 그렇다고 해서 직접 가보고 싶은 욕심이 크게 생겨나지는 않았다는 것. '내가 크로아티아를 직접 보게 될 일이 있을까' 싶은. 뭐랄까, 너무 동화 같아 보이는 곳이라 그 풍경 속에 내가 어울릴 자신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크로아티아에 가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이승기와 꽃보다 누나 열풍도 사그라든 후였다. 그마저도, 함께 떠났던 동생이 크로아티아를 꼭 들러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에, 그럼 그러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서 성당까지 이어진 그 짧은 산책에서 나는 이미 그곳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오래전 에세이를 읽으며 상상만 해보았던, 투명한 수채화 같은 공기가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늦은 오후의 자그레브, 세인트 마틴 성당 앞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누군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선이 닿은 곳은 "고운 미소"였다. 순간 움찔, 했을 정도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어떤 여인이 "저희,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래요?" 하고 카메라를 내게 내밀었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뭐지, 낯선 이에게 이토록 고운 미소를 건넬 수 있다니.


성당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포즈를 잡고 선 그 커플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약간 대각선 방향으로 서서 카메라를 45도 각도로 응시했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등을 감싸 안은 채 역시 45도 각도로 카메라에 시선을 주었다. '참 예쁜 커플이구나' 생각했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건네는 표정과 말투가 고와서, 쳐다보는 것만으로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들.


그들이 권해 준 덕분에, 동생과 나도 성당 앞에 나란히 선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 부러워서 "우리도 백 허그할까?" 농담하며 깔깔대다가 동생과 나는 장난스러운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나의 카메라를 돌려주며 그녀는 우리가 했던 포즈를 따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예의 그 환한 미소로.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 친구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그 예쁜 커플은 우리가 했던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디지털카메라의 조그마한 화면 속에서 남자의 어색함과 뻣뻣함이 묻어났고, 여인은 "이 남자 바보 같아 보여요, 속상해"라고 말하면서 남자 친구에게 슬쩍 눈을 흘겼는데 그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다. 어쩜. 남자는 그저 허허- 하고 웃었다. 


러블리 lovely. 그 커플과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내내 떠올랐던 단어는 사랑스러운, "러블리"였다. 그러고 보면, 나이와 관계없이 어떤 사람들은 예의바름, 기품, 맑음, 밝음 같은 추상적인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하기도 한다. 러블리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던 그 커플은 디트로이트에서 왔다고 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여인은 자신의 고향인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을 남자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함께 온 거라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바꾸어가며 사진 몇 장을 더 찍고서 성당 뒷골목으로 사라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디트로이트가 미국의 어느 주에 속해있는지도 몰랐다.






더욱이, 그로부터 몇 년 뒤의 내가, 길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가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하면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드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때 모터시티였다고 하더라,라는 것이 내가 디트로이트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많이 알려진 자동차 박물관이나 모타운 박물관 같은 곳들을 찾아가는 대신, 나는 천천히 내 방식대로 디트로이트를 알아갔다. 존 메이어 John Mayer의 라이브 콘서트를 볼 수 있었고, 3일간 무료로 도시의 곳곳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서 팻 매시니 Pat Metheny의 기타와 론 카터 Ron Carter의 베이스가 함께 하는 감동스러운 협연을, 스탠리 클락 Stanley Clarke 밴드의 숨 막히는 연주를 볼 수 있었으며, 내 평생 첫 하프 마라톤을 무사히 뛰어낸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였다. 그런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단골로 정해둔 멕시칸 식당에 가서 신나게 먹고 마시며 들뜬 기분을 만끽하곤 했다. 


재밌는 것은, 내가 디트로이트에 놀러 간다고 할 때마다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인데, 한국인 미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아직까지 공항 바깥의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을 가보지 않았다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의 이유는 "한 때 잘 나가던 도시였지만 이제는 망해버려서 볼 게 없다던데"라거나 "헤엑. 위험하지 않아?!"였다. 그들의 반응에 놀란 내가 "무슨 소리야, 디트로이트가 시카고보다 더 깨끗하고 안전한 느낌인데"라고 말하면, 다시 그들이 놀란 눈을 하고 쳐다보는 그런 웃지 못할 대화를 종종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디트로이트의 매력을 이러쿵저러쿵 어필하다 보면, 적어도 직접 가서 느껴보기 전에 편견은 가지지 말기를 당부하다 보면, 어김없이 수년 전 자그레브의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던 예쁜 커플이 떠오른다. 그래,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러블리한 커플이 사는 도시라고! 말해주고 싶어 진다. 어쩌면 일찌감치 그들이 내 마음에 디트로이트를 심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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