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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Aug 06. 2020

당신의 사십 대, 기대해도 좋아

미국 샌프란시스코


꼭 혼자서 가고 싶었던 여행은 아니었다. 그냥 그 여행은 혼자 가게 되었다. 서른셋쯤 되고 나니, 딱히 함께 떠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여행이 망설여지지 않았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질 수 있는 대신, 분명 어느 순간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어야 하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 덜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또한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는 있기에, 일단은 떠나는 설렘만 만끽하기로 하면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장소에 대해서도 낯가림이 심한 탓에 처음 일주일쯤은 숙소가 있는 동네를 익히고 산책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서성이는 일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도드라지게 하지만,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은 남들의 수용이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조심스레 도시의 구석구석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요가를 다녀오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저녁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거나 재즈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조금씩 샌프란시스코가 좋아지려던 무렵, 불쑥 외로움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일찍.


역시 혼자서는 외로운 거였어, 한탄하며 늦잠을 자기도 하고 대충 포장 음식을 사다가 숙소에서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자기도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겨울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사로운 캘리포니아의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과해 얼굴에 닿아도 일어나지 않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침대에서 밍그적 댔다. 그러다, 남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뭐 하고 놀까, 궁금한 마음에 미국 여행 온라인 카페 같은 곳들을 뒤적였다. 동행을 구한다는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용기가 났던 걸까, 댓글 버튼을 누르고 싶어졌다. 밥 한 끼라도 한국말로 수다를 떨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낯선 사람을 만난다니, 떨렸다. 하지만 역시 혼자서는 쓸쓸했다. 그래도 긴장되었다.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그렇게 그 사람을 만났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띄엄띄엄 말을 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천천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이것저것 알려주었는데, 허세스러움도 잘난 척도 느껴지지 않는 겸손한 말투라서 그냥 가만히 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한참만에 깨달았다. 한국말로 수다 떠는 거, 그리우셨던 가봐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 사람은, 그랬나 봐요.라고 답했다. 


너무 이상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결혼 여부도 연애 관계도 묻지 않았고 일부러 말하지도 않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잠시 스쳐지날, 다시 볼 일 없을 사이였으니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질문에 담긴 필터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겹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한참 소개팅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던 시기를 거치고 있었기에, 그런 질문들로 시작되는 대화에 조금 시들해져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비슷한 편견으로 비슷한 질문을 하면 또 비슷한 대답으로 이어지던 뻔한 대화들을 하다 보면 허무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쩌면 무의식적이지만 의식적으로, 나는 나의 나이도, 직업도, 사는 지역도, 연애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뻔한 대화를 모두 덜어내어도, 처음 만난 두 사람 사이에 할 이야기가 넘쳐났다. 점점 우리의 대화는 본질적인 것들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때때로, 내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어 설명해본 적 없는 기분과 생각이 천천히 문장이 되어 나왔다. 나는 점점 말이 많아졌다.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샌프란시스코의 뒷골목들을 찾아다녔다. 그날은 버널 하이츠 Bernal Heights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걷고 또 걷다가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걷고 또 걷다가 공원 언덕에서 노을에 물드는 도시를 내려다보았고, 걷고 또 걸어서 눈에 띄는 바에 들어가 병맥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또다시 언덕길을 따라 걷다가 가느다란 초승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문득 이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사십 대가 너무 궁금하고 기다려져요."


그것이 서른셋이던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던  같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 또래 친구들은 마치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을 우울해하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불렀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면  세상이 회색빛으로 바뀌면서 "청춘은 "나는 것인  알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살아보니 서른 살이 스물아홉보다, 서른한 살이 서른보다, 서른두 살이 서른한 살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절대 다시는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나의 삼십 대가 좋았다. 스물아홉 시절에는 상상도   없었던 행복과, 즐거움과, 성숙함과, 힘든 일을 이겨내는 노련함까지 갖게 되고 보니, 철없던 나의 이십 대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힘듦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이십  시절의 나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삼십 대의 비밀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사실은 혼자서 막연하게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삼십 대가 이토록 매력적이라면, 사십 대는 또 어떤 비밀스러운 느낌이 있는 걸까, 사십 대가 되면 지금의 나는 상상도   없을, 어떤 행복과 즐거움과 성숙함과 노련함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하는 기대.


젊음 대신 늙음을 기대한다는 내 말이 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 사람은 나의 엉뚱한 기대를 평가하거나 놀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혼자서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나는 좋았다. 때로는 내 생각을 내 목소리로 듣는 일이 필요하니까. 가만히 내 설명을 듣고 난 뒤 그 사람은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그 사람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당신은 빛나는 사람이에요. 사십 대에도 당신은 지금처럼 빛나는 사람일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그리고 정말로 내가 마흔이 되었던 생일날, 최근에 오십 대에 접어드신 지인 분에게 귀한 말을 선물 받았다. "너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10년이 기다리고 있어. 즐겨." 나는 굳이 따져서 질문했다. 왜 사십 대가 인생에서 가장 멋지냐고. "내면의 고요함을 만끽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여전히 건강하고 섹시한 매력을 뽐낼 수 있는 나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물론 오십 육십에도 건강하고 섹시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십 대에 비해서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당신의 오십 대도 아름답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오십이 될 때 그분에게 다시 질문을 할 것이다. 살아보니 당신의 오십 대는 어떠셨냐고. 그러면 그분은 사십 대와는 또 다른 오십 대의 매력을 찰지게 설명해주실 것이다.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기만 했던, 그러면서도 기대했던 사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서른셋이던 그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 하며, "당신은 빛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었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분명 그때의 나는 그때의 현실이 힘들었고 그래서 흔들리고 있었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한숨을 쉬고 있었기에, 분명 빛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사람의 그 말은 선물처럼, 주문처럼 나의 삼십 대를 바로잡아 주곤 했다. 기운이 빠지고 초라해지고 허무해지는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면 힘이 났다. 빛나는 사람이라는 자족이 아니라, 정말로 빛나는 사람이고 싶어서, 다시 기운을 내려고 노력했다.


다시 한번, 지금 나는 빛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비록 직장을 때려치우고 뒤늦게 공부를 하겠다고 덤벼들어, 여전히 내일을 점칠 수 없는 불안함 속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과 대화하는 일은 어색하고 부끄러워 버벅대고 있지만, 그래도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그러면 어깨에 각이 잡히고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사십 대가 얼마나 멋진지, 어디 내가 한 번 살아보겠어!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서른셋의 내가 스물아홉의 청춘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언젠가 마흔을 코앞에 둔 후배들에게 웃으면서 말해 줄 수 있기를 상상해 본다, "내가 살아보니, 절대 다시는 삼십대로 돌아가기 싫을 만큼, 사십 대는 매력적이더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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