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움브리아
Fiat 500를 빌린 건, 순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곳 사람들은 일본차를 많이 타지만, 이탈리아에 왔으면 이탈리아 차를 타봐야지!" 하는 단순한 논리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일주일이었기에, 결국은 본인의 단순하고도 무지했던 결정을 후회했던 하루키 씨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역시 이탈리아 차는 안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공감은 해볼 수 없었던 것을 아쉽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태리 자동차를 빌려 타고, 골목골목에 절절한 낭만이 있는 도시 피렌체를 벗어나 움브리아 주의 페루자로 달려가는 내내, 아스라한 능선과 마을들, 평지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멍하게 바라보다가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던 순간도 몇 번 있었다.
페루자 올드타운 성벽 바깥쪽에 차를 세워두고, 숙소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까지는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개성 넘치는 작은 작업실들, 책방, 카페, 소품 가게, 옷가게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라서 트러플 오일 가게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숙소의 커다란 대문 앞에 섰을 때 이미, 낯선 그 동네가 좋아져 버렸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마을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잠시 들렀다 가는 도시라고 여겼던 것이 머쓱해질 만큼,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구시가지의 분위기에 금세 푹 빠져버렸다.
숙소의 커다란 나무 창문을 바깥쪽으로 힘껏 밀어 제치자, 높은 언덕까지 계단을 오르느라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들을 순식간에 식혀주는 바람이 훅, 하고 들이닥쳤다. 창문 너머로 탁 트인 마을과 그 너머의 숲이 내다보여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밖에 나가지 말고 여기 창가에 앉아서 와인이나 한 잔 마시며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하자고, 그래 그래 그러자고, 한껏 들떠서 와인을 사러 나갔다. 그리고 다시, 매력적인 골목골목을 누비며 시간 감각을 잃었다.
재즈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설렘과 생동감이 광장에도 골목에도 가득 들어차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서로에게 가벼운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채우고 즐기는 공감대가 주는 친밀감.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사람도, 눈살 찌푸려지게 매너 없는 사람도 없었다. 크고 작은 식당이나 바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넓거나 좁은 골목길 곳곳에서 버스킹 밴드를 만날 수 있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래된 성벽 바깥으로 내려가면 야외무대에서 저녁마다 재즈 공연이 펼쳐졌다.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대신 이곳에 오기를 참 잘한 것 같아! 하고, 수십 번 생각했다. 사실 그 결정은 같은 밴드의 공연이라도 몽트뢰 티켓이 대체로 두 배 이상이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호텔방도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었지만, 차선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멋지잖아, 싶었다. 소박하지만 단아한 성당과 성벽을 등에 지고서 소풍 나온 듯 잔디밭에서 관람하는 재즈 공연이라니, 너무나 로맨틱해서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근사한 곳에서 처음으로, 그의 라이브 연주를 보게 되었다.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페루자의 작은 야외무대에, 조슈아 레드맨 Joshua Redman이 색소폰을 들고 올라왔다.
스포티파이 Spotify나 애플 뮤직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직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신중하게 고른 CD 몇 장을 옆에 두고, 앨범을 통째로 듣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러다 새로운 음악이 궁금할 때면, 라디오를 들었다. jazz.fm91이라는 캐나다 재즈 라디오 앱을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하기도 했고, 학교 과제를 하기도 했다. 들어본 적 없는 신곡이라도, 라디오에서 서너 번쯤 소개해 주는 것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대충 연주자 이름도 곡 제목도 익숙해지곤 했다. 그중에서도 들을 때마다 귓가에 착 감기는 곡이 있었는데, 색소폰이 멜로디를 리드하는 쿼텟 연주였다. 색소폰의 소리가 지니는 독보적 존재감이 부담스러워서 피아노, 베이스, 드럼 트리오를 선호했던 때였기에, 색소폰이 리드하는 그 곡에 마음이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 곡을 연주한 색소포니스트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을 즈음, 결국 그의 앨범 CD를 샀고, 운전할 때마다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러니까, 그가 색소폰 연주에 대한 나의 편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의 라이브 연주를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피렌체에서 출발하여 토스카나 와이너리를 둘러보려고 여행을 계획하던 중에 그가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공연 날짜에 움브리아 페루자를 들릴 수 있도록 여행 일정을 맞추었다.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은 마치 그동안 나만 몰랐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로 들썩였고,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만 듣던 곡들을 라이브로 듣게 되다니!
마치, 공부만 해서 말주변이 없는 명문대 학생처럼, 그는 무대에서 땡큐! 이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롯이 연주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실제로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 예일대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재즈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유명한 색소포니스트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화려한 입담이나 재치 있는 농담으로 관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보다, 음악과 연주를 대하는 너무나 성실하고 반듯한 태도에서 우러나는 깊이로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서, 피부에 닿는 밤공기의 청량함과 함께 낯설고도 편안한 그의 색소폰 연주를 즐겼다.
연주가 끝나고, 성벽 안쪽으로 다시 계단을 올라 숙소로 돌아가던 그 길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지금도 종종 옅은 주황빛으로 물든 그 거리의 밤 풍경을 떠올린다. 나지막한 계단이 겹겹의 페스트리처럼 늘어져 있던 어느 길의 끝자락에, 풋풋한 청춘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던 살 뜬 목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우리 지금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영화 속을 걷는 것 같지 않아?" 하고 들떠 있던 우리의 대화도, 그 기분도 기억한다.
저녁 식사를 했었는지, 비어가든처럼 꾸며진 곳에서 간식을 사 먹었는지는, 흐릿해져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와인 대신 이태리 맥주를 몇 병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 창가에서 밤 시간을 보냈다. 아직 길 위에서 흥겨운 음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멀리에서부터 아스라이 들려오는 것이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졌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어렴풋한 음악 소리에 오히려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지금은 앨범 CD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라디오를 찾아 듣지 않아도, 스포티파이가 추천해 주는 노래들을 스마트폰에서, 차에서, 거실에서 끊김 없이 이어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편리함이 익숙하기도 하지만, 문득 "그땐 그랬지" 하고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새삼 옛날 사람인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 기분이 싫지 않다. CD 음반을 사본 적 없는 요즘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을, 앨범의 첫 트랙에서 마지막 곡까지 그 순서를 외우게 되고 앨범 내지에 빼곡히 적혀 있는 세션 연주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즐거움 같은 것.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그때 그 노래들을 들으면 빛바랜 사진에서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오듯 생생하게 그때의 추억들이 소환되는 것.
조슈아 레드맨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앨범을 만들어 냈고, 여전히 자신의 연주 실력은 "성장하는 중"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오랜 밴드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러 다니고 있다. 미국의 조그마한 소도시에, 그러니까 내가 사는 바로 옆 동네의 대학교 공연장에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탈리아, 움브리아, 페루자에서 보낸 시간이 켜켜이 소환되면서, 평일 저녁의 애매한 시간이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공연 전, 우연처럼 들어간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토스카나 와인 한 잔을 골라 손에 들고 있으려니, 그곳에서의 날들이 떠오른다.
"토스카나 와인이 유명한 건 맞지만, 사실은 움브리아 와인이 훨씬 더 맛있다오!" 하고, 당당하게 키안티 와인을 까내리던 치즈 살라미 가게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몰랐고, 나는 이태리 말을 잘 몰랐으면서도 어찌어찌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다가 결국 움브리아 와인을 사들고 나오던 순간이 기억났고,
짐을 옮기느라 잠시 차를 세워 둔 사이에 귀신 같이 나타나 주차 위반 티켓을 끊어 놓은 경찰을 찾아가서, 또 어찌어찌 이러쿵저러쿵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 자리에서 티켓을 시원하게 찢어버려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던 순간이 기억났고,
생맥주도 파는 신기한 이탈리아 맥도날드에서 달콤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빨래방의 세탁과 건조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던 날, 옆 테이블 귀여운 꼬마들의 호기심 가득했던 눈동자가 기억났고,
재즈 페스티벌이 한참 벌어지던 구시가지에서 몇 블록 바깥쪽에 있던 성당, 그 앞마당에서 산책하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오후 한 때를 보내던 순간이 기억났고,
숙소의 삐걱이는 낡은 창문 바깥으로 내다보이던 페루자 풍경이, 멀리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그것을 자장가 삼아 스르륵 잠이 들던 그 밤들이, 기억났다.
그리고, 진중하게 색소폰 멜로디를 뽑아내던, 무대 위의 그가 기억났다.
당신이, 그때의 나를 움브리아 페루자로 이끌었군요. 당신의 공연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까지도 그 도시를 모른 채 살고 있겠죠.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눈을 감고 그 거리를 걸어요. 언젠가 그 거리를 다시 걷게 된다면, 나는 또 당신 음악을 떠올리게 되겠죠.
그래서 고마워요, 하고 말을 건넬 수 있다면,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땡큐!! 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이지 않을까. 이것은 그의 음악과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지극히도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스포티파이 대신 오랜만에 jazz.fm91 라디오를 틀어두었는데, 거짓말처럼 색소폰 연주가 흘러나왔고, 디제이는 그의 이름을 소개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