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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Oct 03. 2020

고양이처럼 사뿐한 걸음으로

체코 프라하

스물아홉. 결혼을 생각하면서 만나던 남자와 헤어지고 혼자서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다.


막연하게 스물여덟 즈음에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인생 계획과, 결혼은 니가 하고 싶어 지는 때에 옆에 있는 사람이랑 하면 되는 거라는 선배들의 쿨한 조언이 그 남자와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기를 부추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을 하는 것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인 것만 같아서, 여행도 마음대로 못 다니면 어쩌나 싶어서, 나중에 생각하자고 자꾸 미루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연애가 2년째에 접어들면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남자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하니 연애하는 동안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던 것들이 슬그머니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고, 점점 그의 성격이나 습관들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자신감을 잃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스물아홉의 나는 "사랑의 힘만으로 상대방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굉장히 무섭게 여겨졌을 것이다. 나이 들고 살다 보면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적당히 포기도 하게 되고 싸우는 것이 귀찮아지기도 한다는 것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떤 모습이든 보듬어 안고 맞추어주리라 다짐할 만큼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민되는 연애, 피곤하다, 헤어지는 것이 나은 걸까" 싶은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부터, 정말로 헤어지기까지 반년이 넘게 거의 일 년이 걸렸다. 헤어지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그것을 번복하는 것도 어려우니 나름대로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이별 후의 아픔이 당장은 죽을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무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힘든 것을 겪어내기가 괜히 싫고 두려웠던 것 같다. 마음의 결정이 확고해져서 미련 없이 아픔 없이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끊임없이 우리의 연애를 관찰하고 확인하고 재어보느라 자꾸 내 마음만 어수선해졌고, 끝내 쿨하게 미련 없이 웃으며 이별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별이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업무는 한창 바쁘고, 온 천지에 꽃과 나무가 만개하는 화창한 봄날의 이별이었다. 스물아홉에 이별을 해도, 나를 제외한 세상의 시간은 변함없이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흐른다는 것을 배웠다. 헤어지길 잘한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이제 서른을 앞두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인가 불안해지기도 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제대로 이별을 아파하지도 못하고,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첫날, 체코 프라하로 떠났다.






왜 하필 프라하행 항공권을 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의 장소들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냥 길거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유럽을 가기로 정했던 것 같고, 평소에 로망 하던 여행지가 아닌 낯선 도시들 중에서 선택했으리라. 늘 가고 싶어 했던 도시에 스물아홉에 홀로 떠난 이별 여행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 보니 눈물 나게 아름다웠던 프라하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프라하 까를교가 내려다 보이는 강변에 조그만 옥탑방 아파트를 일주일 빌렸다. 아직 저녁 시간도 되기 전에 숙소에 도착했고, 방에 짐을 풀자마자 그대로 온몸에 힘이 주룩 빠져나갔다. 쿨하지도 핫하지도 못했던 사랑과 그 이별이 서러워서, 함께 계획했던 여름휴가를 아쉬워하게 될까 두려워서, 굳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까지 날아와 낯선 방에 들어서니 새삼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렇게 침대에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지금도 프라하를 생각하면, 그때까지 꾹 눌러두고 있었던 이별의 슬픔과 눈물을 한 번에 끄억끄억 쏟아낸 옥탑방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다음 날,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그제야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도 없어서 그냥 멍하게 앉아 있다가 세수도 하지 않고 산책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까를교를 건너 프라하성까지 걸어 올랐다. 전날 밤에 실컷 울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미련까지 모두 뱉어내었던지, 아침 산책은 가벼웠고, 그제야 프라하의 매력을 마주할 여유가 생겨났다.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까지 천천히 걸으면 마치 타임머신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노팅힐>에서 주인공이 시장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사계절이 바뀌던 그 장면처럼, 시간의 흐름을 압축해서 느끼는 것 같은. 매일 아침 프라하성에 올라가 아무도 없는 광장을 누비고 돌아 내려와서 카를교 바로 앞의 성당에 들어가 앉아있곤 했다. 카를교 아래 캄파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수영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프라하성까지 이어지는 와이너리 산책로와 로컬들의 강아지 산책 공원과 비셰흐라드 묘지까지 천천히 반경을 넓히면서 낯선 도시를 구경하다 보니, 서른을 앞두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쓸쓸함보다 점점 그게 뭐 어때서 싶은 당당함이 솟아올랐다. 그래, 아직, 괜찮은 나이다.


원룸형 아파트의 건식 욕실, 하늘로 비스듬히 뚫린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예쁘게 빛나는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다가, 숙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일주일쯤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낯선 도시를 배회하고 나니 사람이 그리워졌다. 내가 스마트폰을 갖기 이전의 세상이었다.


그때 프라하에는 은근히 유명했던 호스텔 체인이 있었다. 이 층 침대를 열두 개도 더 넣을 수 있을만한 커다란 방에 제대로 된 침대 네 개를 멀찌감치 벽마다 배치해 놓아 답답함이 없으면서 적당히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느 호스텔처럼 히피스럽거나 배낭 여행자들로 북적이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놓은 라운지 공간이 있거나 그렇지 않아서 차분한 곳이었다.


그 넓은 방의 네 벽면을 따라 침대가 띄엄띄엄 놓여 있었고, 한쪽 벽은 거의 통째로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수건 돌리기 같은 단체 게임도 할 수 있을 만큼 꽤 넓은 가운데의 텅 빈 공간을 하루 종일 햇살이 채웠다. 불편 없이 욕실을 공유할 수 있었고, 큰 창문을 열어두고 과일을 먹으며 혼자 보내는 시간도 가지곤 했으니 이전 아파트보다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삼일쯤 지나자 내 침대의 대각선에 놓인 침대, 그 주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쇼트커트 금발 머리가 참 잘 어울렸던, 소녀 같던 아가씨가 언제부터 그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는지, 내가 떠나고 난 뒤로 얼마나 더 오래 그 방에서 지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것이 궁금해졌던 것은 아마도 장기 투숙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커다란 가방이나 짐이 없이 조그마한 에코백만 들고 다니는 것이 근교에서 프라하로 짧은 여행을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침 일찍 각자의 하루를 시작할 때에도 그녀는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오전 내내 방에서 뒹굴다가 점심시간 즈음 밖으로 나서는 날에도 나는 벽을 향해 돌아 누운 그녀의 조그마한 등을 보면서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녀는 제일 늦게 방으로 돌아왔다. 어떤 이는 이미 잠이 들어 있기도 했고,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기도 했던, 자정에 가까운 시간, 그녀는 특별히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자기 침대로 걸어갔다.


살아서 움직이는 그녀를 보는 것은 딱 그 순간뿐이었다.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에코백을 내려놓고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이불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르륵 들어가면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단아한 일련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여서 순식간에 끝나 버린 관찰을 나 혼자서 아쉬워했다. 대신 가지런히 침대맡에 놓인 그녀의 검은색 프렌치솔 플랫슈즈를 멍하게 바라보면서, 도대체 그녀가 풍기는 단아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그때 프라하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어느 건물 지하에 숨어 있는 조그만 재즈바였다. 밖에서 보면 여기가 맞나 싶게 허름한데, 지하로 내려가면 그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와 재즈 관련 기사, 포스터, 그동안 다녀간 유명한 연주자들의 사진이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면 빈 의자 없이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을 해야 할 만큼 붐볐는데, 빨간 벽돌로 마감된 아늑한 공간에 울리는 묵직한 재즈 트리오의 연주는 사람들을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게 했다. 맥주 한 잔이나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눈을 감으면 온몸으로 음악이 느껴졌다.


무대에서 제일 먼, 그래 봐야 5미터 남짓한, 벽에 기대어 한참 콘트라바스의 울림을 즐기다 눈을 떴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바로 앞 조그마한 테이블에 남자와 함께 앉아있는 그녀였다. 침대 밖의 그녀는 예상한 대로, 맥주를 마시고, 남자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직원에게 계산서를 부탁하여 더치페이를 하는 그 모든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거나, 옷매무새를 다잡거나,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거나, 의자를 조금 당겨 앉으며 자세를 바꾸거나 하는 것은 애당초 그녀의 행동 사전에 없는 일인 것처럼.


그때부터 나는, 눈에 띄게 예쁘장한 얼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언제나 화사한 미소를 띠는 것도 아니었고, 세련된 옷차림을  것도 아닌 그녀가 왜 그토록 우아하게 보이는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유난히 시간을 질질 끌었던 이별과  시간 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너무 구질구질하고 너덜너덜하다는 자책을 하고 있던  눈에, 그녀는 대조적으로 더없이 담백한 행동과 사고를 하는 것처럼 확대되어 보여서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행동과 표정을 보았을 뿐인데도, 그녀는 그녀의 세상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시콜콜한 주변 잡음에 웬만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그날은 유난히도 라이브 밴드의 연주가 좋아서, 나도 평소보다 늦게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1층의 커다란 현관문 앞에서 그녀가 남자에게 보일 듯 말듯한 미소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굿나잇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 보여서 나는 조금 발걸음을 늦추었다. 나란히 같은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섰을 때, 그녀는 이미 침대 위의 조그마한 웅크림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문득문득, 나는 내가 소망하던 우아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곤 한다. 주로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산만해지는 날에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면, 이름도 모를 금발 소녀의 침대맡에 정물화처럼 놓여 있던 플랫슈즈가 떠오른다. 고양이처럼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를 상상하면서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기를 바랄 때면, 프라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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