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_06
'귀찮으면 가시던가!' 분위기다. 파리 여행 중에 음식점에 들어갔다. 파리는 여행자들에게 불친절한 도시로 이름 나 있다. 다른 어느 도시보다 영어 안내가 없고 웨이터도 영어를 못 한다. 관광지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만의 생존 영어를 한다. 그런데 여기는? 웨이터에게 영어 메뉴판이 없냐 물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웨이터는 불어로 뭐라고 하더니 못 알아듣자 딱 두 마디 했다. "구글 트랜지션"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알아서 메뉴를 해독하고 주문하라는 거다. 오호~ 이런 배짱이 있나! 싫으면 나가던가~ 분위기다. 서비스업의 기본은 친절인데 프랑스 서비스 업계의 기본은 '배짱'인 듯하다. 파리만 이런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불어만 한다. 배짱과 무례가 종이 한끝 차이같다. 그러나 모든 식당이 이러니 무례라기보다는 문화같은 느낌마저 든다. 배짱문화!
부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일어난다.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는 그 태도에서 자기 식당의 자부심에 대한 부러움과 손님은 왕인데 어떻게 이렇게 서비스 한단 말인가 하는 짜증이 동시에 일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그동안 억눌렀던 관광욕구가 터져 나오면서 오버투어리즘이 유럽을 강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세를 높이며 관광객에게 '그만 와!' 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서비스가 친절하지 않는 데에는 '너 말고도 손님 많아'라는 배짱이 자리 잡고 있다. '네가 꼭 우리 집 손님이 되었으면 좋겠어'라면 이런 배짱 영업이 나올 리가 없다. 서비스 업계에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 배짱영업이 형성된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음식값은 올라가고 서비스는 배짱이 된다.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가 전국적으로 영어를 안 쓴다. 내가 시골 작은 식당에 가는 게 아니라 대도시 관광지에 있는 식당만 가는데도 그렇다.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차츰 나도 '배짱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배짱이 꼭 허세나 거만인 것은 아니다. 수요가 몰릴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몸짓이다.
배짱을 부린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자신감에서 자라난다. 언젠가 '배짱 있게 삽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리저리 눈치 보고 자기 할 말 다 못하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삶에서, 호기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배짱 있게 사는' 거다.
나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배짱 있게 살려면 무엇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잘하며 나의 포텐셜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배짱이 나올 수가 없다. 구글 번역기로 메뉴판을 보라는 웨이터의 기가 찬 응답으로부터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면에서 배짱을 부릴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갑분 자아 성찰이 주문한 메뉴가 나올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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