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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장병아저씨께

가을이다 가을_05

by 포에버선샤인

예전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손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국군장병 아저씨께 뭐라고 편지를 써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몸을 비틀며 보내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간 초등학생들의 편지를 읽으며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을 통해 듣곤 했다.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용도 별게 없는 그 편지가 뭐가 재밌을까?'였다.


조카가 육군에 들어간 후 첫 휴가를 받아 나왔다. 깜짝 놀랐다. 입대 전의 헐렁하고 아이 같던 모습은 어디 가고 어엿한 군인이 되어 군기 잡힌 모습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우정의 무대'와 '진짜 사나이'같은 티비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군복 입고 '충성!'외치며 거수경례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 왔지만 그럼에도 군기와 기백이 온몸에서 뿜어 나왔다.


'아~ 이래서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대한 지 약 3개월 정도 되었지만 벌써 조직에 적응하는 법부터 군인의 역할까지를 몸에 익히고 있었다. 치킨까지 부대 앞으로 배달이 가능하다는 천지개벽할 요즘군대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남편과 동생의 군부대적 이야기를 들으면, 신병으로 들어가면 항상 '막내야~ 라면 끓여 와라~'를 듣고 휴가를 나오면 치킨과 초코파이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나마 안 변한 건 요즘도 '막내야~ 라면 끓여 와라~'는 있단다. 그러나 좀 친해진 사이에서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는 배달도 시켜 먹는 마당에 못 먹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 휴가 나온다고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다고 했다. 아들의 첫 휴가에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 했던 동생은 좀 머쓱해져 버렸다. 편하면서도 왠지 아쉬운 그런 느낌이다.


친구의 아들들의 군대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때는 좀 남의 이야기 같았다. 어릴 적 콧물 질질 흘리던 때부터 보아온 조카의 군생활이야기는 재밌으면서도 기특했다. 단체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도 정말로 실제 총을 들고 작전을 간다는 것도 밤에 보초를 서느라 새벽에 깨어있다는 것도 대견스러웠다. 네가 정말 몇 달 전에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내 조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면 그 역할에 맞게끔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보통은 위기의 상황에 리더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규율이 생명이 조직에 들어가는 것도 바로 이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과정이다. 제복의 힘도 크다. 군복을 입으면 군인답게, 경찰복을 입으면 경찰답게, 간호사 복을 입으면 간호사답게 저절로 행동하게 된다.


며칠 후에 다시 부대에 돌아가서 2-3달 후에 다시 휴가를 나올 조카에게, 밥 잘 먹고 총알 간수 잘하고 건강히 있다가 나오라고 말해 주었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서 왠지 늠름함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갑자기 나도 '충성'하면 거수경례를 하고 싶어졌다.


#입영 #군대간조카 #첫휴가 #요즘군대 #기합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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