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에는 스무 살이 된 나를 상상했다. 길이는 종아리 중간쯤 떨어지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혹은 달달한 라테 또각 거리는 구두를 신고 괜찮은 가요를 흥얼거리며 출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을 상상했던 거 같다.
나의 스무 살은 그랬다. 멋으로 들고 다니는 아메리카노는 입맛에 맞지 않아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액세서리샵에 귀걸이를 고르듯다양한 커피를 쇼핑했다. 어울리지 않아 잔뜩 들떠있는 메이크업과 촌스러운 스키니진다리가 아파도 포기할 수 없었던 높은 구두가 그 시절 나를 대변했다.
다시 서른 즈음을 떠올렸을 때그날의 공기는 마치푸른색과 같았다.들숨으로 들어오는 푸른 냄새에 나의 서른은 흰 종이 가득 여러 가지 색을 메웠다.'집 한 채는 샀겠지? 차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아 빨간색 스포츠카로말이야.' 월급에 맞춰 산 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대리석이 깔린 30평대 아파트를그렸다. 감히 그런 상상을 했다.
연말에는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10대에도 20대에도 아직 열 살에 머물러있는 둥구스름한 글씨로 작거나 커다란 목표를 적었다. 이루거나 이루지 못했던 소망들이 따뜻한 불씨가 되었다.
호호 불면 어엿한 불이 되어 당당히 고개를 들겠지 꺼져도 괜찮아 나는 다시 꾹꾹 눌러 내년의 소망을 피울 테니까.
사계절을 지나 또 몇 해를 지나 나는 서른 즈음에 서있다.지금의 나는 40대의 나를 힘이 닳도록 조각한다.'엄마는 어땠어? 혹은 당신은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에 아프거나 평온했다는 무수히 많은 답변을 기대하며 한 달 남짓한 20대의 마지막을보낸다.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는물었다.
지금 내 인생의 소설은 몇 페이지쯤일까요?
나의 소설은 에필로그를 끝낸 후 이제 막 2부에 접어들었다.돌이켜보면 뜻대로 되지 않았던 많은 날들,
울고 웃었던 지난 과거들이 소중하게 모여 한 편의 장르가 되었다. 그래서 괜찮다. 모든 날들이 다시 내가 되어 살아간다.
먼 훗날 누군가 '당신은 어떠셨나요?'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한 폭의 그림 속 무지개 같았다고 말하련다. 푸르던 날과 또 다른 색색의 날들이 모여 내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