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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Nov 14. 2020

11월의 찬 바람이 따뜻해지기까지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11월이라는 계절에 무던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중학생이었던 11월의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그렇게 그날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남겨진 나와 엄마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11월이 반갑지 않았다. 찬란한 여름이 지나고 울긋불긋하게 물든 풍성한 가을도 지나간 딱 11월의 앙상함이, 부쩍 차가워진 바람이 유난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날이 매년 다시 찾아오듯 11월 만은 그냥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몇 년간, 적어도 또래 중에서는 내가 가장 힘든 일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시야가 점점 자라면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나와 같이 인생 밖으로 밀려나는 듯한 위기를 지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위기의 크고 작음과 모양에 상관없이 정말 우리 모두가 말이다.


‘고난 없이 살 수는 없나요?’ 내가 자주 던졌던 말이다. 우리의 삶이 정말 먼지처럼 한순간에 지나갈 짧은 인생이라면, 언젠가는 끝이 날 유한한 존재가 왜 이 수많은 고난을 버티고 헤쳐나가며 살아내야만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떼쓰곤 했다.


다행히도, 오랜 시간을 거쳐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고난과 두려움, 불안과 막막함이 사랑 바깥에 있던 것이 아님을. 내가 어떤 상황에 쳐해있을 때라도 함께 하는 존재가 있으며, 내가 어려움을 요리조리 피하며 사는 것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안심할 수 있기를, 그 큰 사랑을 내게 알려주고자 안달나있는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작은 페이지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주저앉아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나기까지 긴 방황과 혼란이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은혜가 있었다. 너무나도 깊게 파묻혀있던 나를 가장 알맞은 때에 일으키신 손길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내 옆을 지켜준 많은 이들에게도 정말 고마움이 크다.


만약 지난날의 나처럼 11월의 찬 바람이 아직 너무 차갑게만 느껴진다면 오늘 한 번 더 기억하자. 나의 고난보다 이 겨울의 찬 바람보다 사그라들지 않는 따뜻한 그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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