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들고 있는 아기가 무섭다.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꾸밈없이 담기 위해서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여름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콧물을 몇주 째 달고 산다. 훌쩍훌쩍... 어제 아기 몸이 따끈하고 열이 살짝 있는 듯해서 체온을 재보았더니 37.8'C. 아내와 나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이전에 열성경련으로 인해 한 번 크게 당한 이후로는 열나는 게 너무너무 무섭다. 산부인과 전문의라도 별 수 없다. 자기 자식 아프면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힌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의 저편에 넣어두었던 가벼운 질환부터 심각한 질환까지 다 떠올려본다.
혹시나 폐렴은 아닐까... 이상한 세균 감염은 아닐까... 감기가 아닌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으로만 고민하는 나에게 아내는 본인의 청진기를 건넸다. 혹시나 폐음에서 열을 의심할만한 무언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이다고 한숨 돌리려는데 딸이 새로본 장난감이 신기했던지 본인 귀에 꽂고 가지고 노느라 정신없었다.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아빠 가슴에도 한번 대어보고, 엄마 배에도 한번 대어보고. 영상에서만 보던 의사 선생님이 사용하는 청진기를 처음 보니 즐거웠나 보다.
귀여워 보이긴 했지만, 즐겁게 놀고 있는 딸에게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청진기 드는 직업은 안 하면 좋겠어
라고... 딸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내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의과대학은 일반적인 대학교 방식과 다르게 졸업까지 최소 6년이 걸리며, 무탈하게 진급하는 경우에는 의예과 2년 본과 4년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의학전문 대학원은 다른 학부 4년, 의학 전문대학원 4년이다.) 6년 과정 중에서 5년차 즉, 본과 3학년이 되면 병원 실습을 나가게 된다. 학교에 따라서 병원 실습에 나온 학생들을 부르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학생 선생님', 'PK나', '폴리클(Polyclinic)' 등 다양하게 부른다.
병원에 처음 들어가는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이름이 여럿이지만, 우리 학교에선 진원식이라 불렀다. 단어 그대로 병원에 나아가는 행사라는 뜻이다. (위의 사진처럼) 이 행사에서 나의 지도교수님이 빨간 청진기를 내 목에 걸어주셨다. 의과대학 외과장으로 계셨었던 교수님에게 청진기를 받아서 그날 기분은 정말 끝내줬다. 왠지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된 마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시크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검정 청진기가 아닌 빨간 청진기. 왠지 그 청진기만 목에 매었을 뿐인데... 의사가 된 것만 같았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웬만하면 목에 걸고 다녔다. 두 손으로 청진기 각각의 끝을 잡고 목에 휙~하고 걸친 후에 회진을 돌 때면 왠지 모를 +9 자신감을 장착한 듯 회진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대학병원 수련을 마치고 나오니 청진기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최애(最好)하는 의사 템이었으니깐 종종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여러 뉴스를 보다 보면 청진기를 사용할 일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 듯하다. 어른과 아이를 치료하며 즐거워하며 출산과 수술의 경이로움에 빠져 본인의 길을 택했던 선생님들이 종종 힘든 시기를 겪고 본인의 기쁨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만을 강요받고 본인들의 즐거움과 기쁨은 의사의 당연한 의무라는 미명 하에 가려져 버린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많은 의사들이 청진기와 메스를 내려놓고 있다.
딸아... 이제 그만 내려놓고 자자...
배운 게 이것밖에 없는 나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내 딸은 적어도 청진기를 드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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