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의 동반자

달리기 이야기

by 재이

달리기를 운동으로 하겠답시고 본격적으로 달리게 된건 이번이 처음이기야 하지만, 처음 '달리는 행동'을 한 건 스물 두살 때였다. 그때는 운동을 위해, 뭔가 성취감을 위해 달리기를 한 게 아니라 밤에 잠을 자기 위해 달리기를 했다. 육체적으로 몹시 나를 소진시켜야만 잘 수 있을 것 같았던 때, 그때 나는 첫 이별을 겪고 있었다.



내 첫사랑은 대학교 선배였다. 훤칠했고, 훈훈했고, 지금 생각해도 그냥 내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사람.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법한 것들이 그때는 뭐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예컨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담배를 태운다던가 하는 것. 술자리를 옮기는 와중에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기억하고 골라주는 것. 뭐 그런 것에 반했던 것 같다. 원래 그런 사소한 것에 반하는 것 아니겠는가 싶지만, 아무튼 그게 뭐라고 그렇게 반했었는지 싶기도.


그래도.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더 사랑에 빠지기 쉬웠고, 사랑해본 적도 없었고 그랬으니까.


첫사랑이었고 첫 이별이었던 만큼 진짜 고통스러웠다. 친구들에게 말도 못했다. 차마 헤어졌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다는 것에 가깝다고 할까.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입 밖으로 그 말이 안 나와서였기도 했고, 말하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어서였고, 그랬다. 그 감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 그렇게 책을 읽었다. 책은 내 도피처였다. 세계 문학을 많이 읽었는데, 소설 속에서 로맨스 장면이 나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도 작품 속에 로맨스 장면 하나쯤은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런 부분은 피해 읽고 싶어도 그런 식으로 피해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몹시 괴로웠던 소설도 있었고, 그럭저럭 잘 읽었던 소설도 있었고, 그땐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도 있었고.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게 아니면 미드를 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낮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에 가깝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람과 헤어진 건 여름 방학 때였고, 대학생의 여름방학이란 의지적으로 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할 일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무기력했고, 무기력한 채로 나를 내버려뒀다. 낮에 그렇게 나를 책과 미드에 파묻고 나면 밤이 왔다. 그 밤을 보내려면 낮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달리기였다.


여름밤이었다. 불이 다 꺼져가는 가로등 아래에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숨이 차게 달리기를 했다. 그렇게 달리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낮 시간 동안 정신을 아무리 소진시켜도 신체는 무기력한 채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뛰고 뛰면 밤에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선택된 달리기.


달리는 와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 어땠는지 그런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이 안 났겠는가, 그땐 오직 그 사람 생각 뿐이었는데. 다만 달리는 동안 아무 음악도 안 들었던 기억은 난다.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고, 또 나중에 그 시간을 기억할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달렸다. 우비 쓰고 뛸 만한 용기는 없었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비가 오나 안 오나 달렸던 거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 꼭 잠을 잘 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수는 있었다. 밤에 혼자 첫사랑 생각하며 읍읍 거리며 숨 죽이며 청승 떨지 않아도 됐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 최초의 달리기는 어떤 도피처 역할을 해주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사실 진짜 힘든 건 밤이 아니라 아침이라는 것을. 밤은 어떻게든 지나간다. 노력하면 된다. 내가 달리기를 했던 것처럼. 그런 방식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하면 된다. 뭔가 이겨내고 견뎌내고 지나갈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아침. 아침이 오면. 아침은 어떻든 뭐라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고. 아무것도 안하는 시절에도 아무튼 일어나기라도 해야 하는 시간이고. 정신이 드는 시간이고.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고.


그런 식으로 첫 이별을 견디어 내며 나는, 세상에 이별을 해낸 사람들이 정말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렇게 사랑에 관한 소설이 많고, 시가 많고, 노래가 많고, 드라마가 많고, 영화가 많은데. 그걸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그럼 다들 그걸 다 견디고 산다고? 나는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라도 있지만, 다들 그 마음으로 공부도 하고, 출근도 하고, 할 일도 하며 산다고? 하는 생각에.


그리고 또 어떻게 다들 새로운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견뎌 내고, 극복을 하고, 제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지?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했던 스물 둘의 내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여름밤을 매일 달렸던 내가 있었다. 그게 정말 내 인생 최초의, 내 의지로 달렸던 달리기였다.


그렇게 한 달을 달렸고, 한 달을 달리고 관뒀다. 내가 한 달만에 그 사람을 잊어서가 아니었다. 이별이 한 달만에 끝나서가 아니었다. 그 이별은 더 오래갔다. 다만 한 달을 우격다짐으로 낭비하며 살고보니 이제 그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 사람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 나를 괴롭히고, 몸을 혹사하고, 잠 못 자는 시간을 억지로 자기 위해 애쓰고, 고통스러운 아침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고, 남은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은 그만두어야 겠다고 말이다. 이제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말하고, 내가 할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그렇게 끝났던 달리기. 그리고 처음 만났던 친구가 "오빠는 잘지내?" 물었을 때 대답을 끝마치지 못하고 터져 나왔던 울음, 그 울음의 첫 시간을 함께 했던 달리기. 그 울음을 함께 견뎌준 달리기.


그걸 수년을 돌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 이렇게 새로이 만날 줄은 정말 몰랐지. 스물 두살에 악을 쓰며 달렸던 것과는 달리, 이렇게 반갑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그럴 줄은 정말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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