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무슨 생각해

달리기 이야기

by 재이

달리기 하면 지루하지 않느냐, 달리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 나는 달리기가 지루해 견딜 수 없다, 하는 말들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 달리기가 지루한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달리기를 완수해 내느냐는 질문이었다.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사실 나는 달리는 와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이는 하루키가 자신의 수필에서도 쓴 것과 같은데, 그래서 나는 그 대목에도 몹시 공감하며 읽었더랬다.


달리며 드는 생각이란 마치 달리는 와중에 발이 잠깐 지면을 닿고 떨어지는 순간과 같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라서 사실 '달리면서 어떠어떠한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는 좀 부적절한 것 같다.


생각은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지, 내가 뭔가를 꽤나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탓이다. 아주 많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를 들러 통과하므로 기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되는 탓이다.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모든 색을 좋아합니다'라는 대답은 '어떤 색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되어버리는 것 같이.



'그래도 무슨 생각이든 할 것이 아닌가' 내지는 '그렇다면 대체 무슨 생각들이 너를 스치고 지나가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때 그때 다르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날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고, 아무 고민이 없는 날에도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나 생각하게 되는 것들은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참, '유학을 가지 않겠다' 하고 결심을 했을 무렵. 그리고 지도 교수님께 그에 관한 메일을 보내기 전후의 무렵. 그때의 달리기에서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앞으로의 인생이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으니 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하고 싶다, 이것을 원한다 식으로 나는 취향과 목적이 꽤나 뚜렷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고 진로와 삶의 방향 역시 한번 정한 뒤로 그것을 위해 행군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좌초되었다. 그러니 내가 할 다음 일은 좌초된 배를 끌어내고 수리해서 다시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고 그렇게 하는 와중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목적지가 바뀌었다는 말을 들은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목적지가 어딘지 아직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게 그건 아주 근본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달리기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뭐 하고 살지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지만 저것은 아주 특별한 주제였다. 평소에는 보다 일상적인 것에 대해 생각한다. 달리기를 할때는 달리기 자세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게 가장 일반적인 생각의 시작점이다. 배에 얼만큼 힘을 줘야지. 상체가 흔들리지 않게 해야지. 팔을 좀 더 힘있게 흔들어 봐야지. 발이 움직이는 박자를 이정도로 맞추어 봐야지. 하는 것들. 이런 것에 맞추어 애쓰다 보면 나 모르는 새 시간이 꽤나 지나간다.


물론 저것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계속 집중하고 신경을 쓰는 것은 꽤나 고도의, 정신적인,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고 달리기 자세에 대해 집중하고 신경쓰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해서 정신이 다른 곳으로 금세 새어 나간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할때와는 달리 달리기를 할때는 그런 정신의 분산을 별로 개의치 않아도 된다. 다른 생각이 들면 그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그때 그때 내 일상에 있는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령 "이번 엄마 생일 선물로 무엇을 골라야 하는가" 같은 것에서부터 "왜 나의 제자 X는 자꾸 1번 유형에서 틀리는가"까지. 혹은 당시 내가 읽는 책에 관한 것들. "헤밍웨이는 왜 이러게 나를 설레게 하는가" 내지는 "그는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 그렇게 흘러갔다가 또 앞선 것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1번 유형을 틀리지 않게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라던가 "왜 엄마 생일 선물을 고르는데 누구는 비협조적인가 (열받는다)" 라던가 하는 것들.


이렇게 온갖 생각들이 내게 들어오고 나를 통과해 나가고.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듯 생각도 나를 스치고 지나가고. 그런 시간이 반복된다. 달리기의 미학은 어느 정도 이 시간, 이 생각의 일에 있다고 나는 몹시 느끼고 있다. 모든 생각에 열려 있고, 그것들이 나를 관통하게 내버려 두고, 그렇게 모든 것을 끌어 안고, 모든 것이 지나가게 하고, 그렇게 다 소화한 뒤에 내게 남는 생각은 도대체 무엇인지 지켜보는 일. 그 시간의 일. 그 생각의 일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꼭 덧붙이고 싶다. 어느 한계점 이상으로 힘들어지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오직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달린다, 저기까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하는 생각으로 달린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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