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란 무엇인가

달리기 이야기

by 재이

달리기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고 관련 커뮤니티에도 속하게 되면서 러너들의 말을 많이 듣고 읽었다. 러닝에 관한 말, 진정한 러너에 관한 말들을 말이다. 가령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려야 진정한 러너라던가, 달리다가 걷는 것은 '못된 습관'이라거나, 페이스가 얼마 이하라면 그건 러닝이 아니라 조깅이라던가 하는 말들.


그러나 또 다른 말들도 많이 들었다. 다른 말들은 이런 것이었다. 진정한 러너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는 말, '조깅과 러닝'을 구분함으로써 자신은 조깅만 한다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는 말, 자신은 늘 달리기 훈련을 하며 걷기를 병행했고 그래도 괜찮다는 말, 그런 말들.


나는 후자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눈비오는 날에도 맹훈련을 해야 진정한 러너라거나, 걷기와 달리기를 함께 하는 건 좋지 않다거나, 페이스가 얼마 이상은 나오는 것이 좋다거나 하는 말들도 세부적인 의미에서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모조리 쓸모없는 말일 리는 없다. 달리기에도 제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까 각자 자신의 목적에 맞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컨대 지구력 훈련을 하는 사람이 조금 힘들다고 해서 달리기를 하다가 걸어버리면 물론 안될 것이다. 그리고 마라톤 훈련을 하는 사람이 날씨에 따라 마음을 바꾸어 마구잡이 식으로 달리기 훈련을 중단하면 안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정말 세부적인 조언이 될 수는 있어도 누가 러너이며, 무엇이 진정한 러너인지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10km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10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10km를 달리는 날에는 반드시 걷기를 섞는다. 그리고 걷기를 섞어가며 달려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달린 10km가 꽤나 성취감을 준다.


달리다가 중간에 걷는 것은 지구력을 기르기에는 좋은 습관이 아닐 수도 있지만, 좀 더 오래 달리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겐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달리는 와중에 내 육신의 한계가 있다면 기꺼이 걷기도 하면서 전체적으로 달리는 거리를 늘려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러닝과 조깅의 페이스를 구분해서 조깅과 러닝은 다르다는 그런 기준 역시 분명 의미있는 기준이기는 한 것 같다. 우선 페이스가 빨라질 때 오는 희열이 있다. 그래서 페이스에 욕심을 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러닝과 조깅을 구분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속도에 대한 일이다.

다만 달리기에 관한 책을 보다 보니, 여러 연구는 러닝과 조깅을 분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면 러닝은 보다 격렬한 운동에 속하고 조깅은 그렇지 않은 쪽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 달리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내가 지금 당장 연구 대상이 아닌 이상, 내가 달리고 있고 속도에 욕심을 많이 내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느려도 별 문제가 안 된다. 나는 러너인 것이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내일은 한 걸음 더 달릴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뭐 어떤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페이스를 기준으로, 혹은 달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전체 거리를 기준으로 '잘 달린다'와 '못 달린다'를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더 못 달릴 수도 있다. 내 기분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 몸도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으니, 뭐 그럴 수도 있는 것쯤 아닌가 이 말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상 그 방식이 무엇이건 나는 러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며 달리는 것이 좋다. 아주 조금 달려도 괜찮다. 1분만 달려도 괜찮고, 30분을 달려도 괜찮다. 어느 날은 힘들다면 그냥 돌아와도 좋다. 어느 날은 쉬어도 좋다. 그래도 계속해서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러너이다.


이렇게 달린다고 해서 아무 목적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를 향상시키고 싶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10km를 쉼없이 달리고 싶고, 더 먼 거리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부적이고 작은 목표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러너라는 전체 방향의 길에서 내 마음가짐을 흐트러트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나의 달리기는 몹시 불행해지는 것이다.


내게 있어 달리기란 무릇 나의 자아(ego)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나의 건강(healthy)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self)을 위해서 달린다. 다른 것들은 내가 러너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달리기 때문에 뒤따라온다. 그렇게 달릴 때 나는 늘 러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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