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서 배우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비버는 연못에 사는 네발짐승이다. 비버의 음부(陰部)는 어떤 질병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누가 비버를 발견하고 그 부위를 자르려고 뒤쫓으면 비버는 자기가 왜 쫓기는지 알고는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려고 얼마만큼은 빠른 발을 이용해 도망친다. 그러나 제가 잡히겠다 싶으면 제 음부를 잘라 던짐으로써 목숨을 구한다. <이솝 우화, 비버>
때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 이솝 우화의 비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만큼은 빠른 발을 이용해 도망치지만 잡히겠다 싶으면 음부(陰部)를 잘라 던짐으로 목숨을 구한다. 과연 나는 소중한 것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오빠와의 좋은 추억
"오빠 이 이불 덮지 마" 한 이불을 덮으면 임신하는 줄 알던 시절이었다. 방학 때 오랜만에 서울에서 부산 온 오빠가 내가 덮은 이불을 덮을까 미리 말했다. 오빠는 씽긋 웃기만 했다. 1남 3녀인 우리 형제는 나이 터울이 많아 5살 많은 오빠와 함께 지낸 시간이 그나마 가장 많다. 어머니가 행상 나가시면 오빠가 세끼 끼니를 챙겨주고, 조금만 먼 거리를 갈 때면 힘들어하는 나를 오빠는 업어줬다. 오빠가 없으면 못 산다고 할 만큼 친하게 지냈다. 그랬던 우리가 훗날 시험대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오빠도 결혼하고 나도 결혼했을 때다. 맞벌이하는 동생을 오빠는 안쓰러워했다. "내가 얼마 주면 직장 안 다녀도 되겠냐?" 오빠는 돈을 줘서라도 내가 직장에 나가지 않길 바랐다. 오빠는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친구들을 통해 투자한다고 했고 수익이 나오면 돈을 준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있다가 투자한 곳이 사기단인 것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 오빠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 변호사들도 당했다.
힘든 선택의 기로
오빠는 많은 돈을 투자했기에 경제적인 위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오빠는 내게 보증을 서 달라고 했다. 비버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순간이 온 것처럼, 나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왔다. 직장에서 첫 발령부터 계속 금융 쪽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직장에서는 보증 선 사람은 금융에 근무하지 못하는 규정이 있었다. 주위 몇몇 동료가 보증으로 봉급 차압이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만일 오빠가 이자를 미룬다면 내가 대신 이자를 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구했다. 바람막이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물을 달라고 했다. 감사의 말보다는 자신을 더 신경 써달라는 투정만 늘어놓았다. 둘은 사랑했지만, 어린 왕자는 장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실망하여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사랑했지만 떠난 것처럼, 오빠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사랑하기에 그러지 못하고 우리 형제애와 직장을 위해 내 길을 갔다.
오빠와 단절
거의 15년 만에 오빠 집에 놀러 갔다. 오빠와 밤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니 안 보려고 했지"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 오빠가 어려웠던 시절 보증을 거절했던 나를 지금까지 야속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빠서 못 본 줄 알았는데 오빠는 일부러 나를 피했던 것이었다. "야! 공무원이 무슨 보증 선다고 문제 될 것이 있냐? 친구들이 공무원이 많아 물어보니 아무도 그렇지 않다더라." 다른 공무원과 우체국 상황은 다른데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오빠와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서먹서먹했다.
30년 오빠와의 화해
오빠 부부, 우리 부부와 큰 조카 부부만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큰언니의 장남이 2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기에 명절에는 함께 모여 예배드린다. 오빠 가족은 참석하지 않는데 작년 추석에는 오빠도 참석한다고 했다. 30년 만에 온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조카는 나보고 간증해 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교회를 싫어했던 내가 53세 늦은 나이에 내 발로 교회로 간 사연을 들려줬다.
오빠는 계속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도 울면서 간증했다. 30년 이상 고였던 오빠와의 감정이 풀리는 날이었다. "오빠는 아가씨만 생각해, 아가씨 이야기밖에 안 해"라며 신혼 때 올케언니는 수시로 이야기했다, 그랬던 오빠가 아무 대화 없이 나를 손절했다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오랜 시간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에 더 힘들었을 오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비버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서라도 목숨을 구했듯이, 나도 어려운 시절 오빠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 우리 형제를 지켰다. 만약 내가 보증을 섰더라면 우리는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나의 선택이 냉정하고 서운했을 수 있지만 때로는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오빠와 나,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키려 했고 많은 시간이 지나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