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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기만 하는 까마귀와 희생하는 밀알, 나의 선택은?


병든 까마귀가 제 어미에게 말했다." 신에게 기도하고 울지 마세요!" 어미가 말했다. "얘야. 신들 가운데 어느 분이 너를 불쌍히 여기시겠나?" 네가 고깃점을 훔쳐 먹지 않은 신이 한 분이라도 계시니?"<이솝우화, 병든 까마귀>





평소 잘 지내던 동료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고, 즐겁던 일상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회의로 바뀌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힘만으로 이 답답함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교회를 찾았다. 이솝우화 속 병든 까마귀 이야기가 처음 교회 갔을 때의 내 모습과 같았다.


교회에서 기도하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기도 중에 남 탓으로만 여겼던 일들이 내 잘못으로 여겨졌다. 까마귀 어머니의 말처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도와주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직장에서 말을 함부로 할 뿐 아니라 자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일쑤인 동료가 있었다. 승진에서 연이어 두 번 떨어졌다. 동료들도 그의 승진이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승진 발표되는 날 "회사가 불공정하다."며 분개했다. 자신의 평소 행동은 돌아보지 않은 채 원망만 했다. 마치 고기를 훔쳐 먹으면서도 신들의 도움을 바라는 까마귀처럼.


평소에 친절한 사람도 운전대만 앉으면 난폭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대체로 끼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내가 급할 때 다른 차들이 양보하지 않으면 원망하기 십상이다. 이 역시 까마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평소에는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남들의 배려를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이 구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다. 이솝 우화의 까마귀와 밀알의 비유가 묘하게 겹치며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까마귀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구했지만, 밀알은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더 큰 생명을 얻는다. 둘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받기만 하려는 것과 남을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것. 우리는 모두 까마귀가 될 수 있고, 밀알이 될 수도 있다.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살다가 어려울 때만 도움을 청하는 까마귀의 모습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열매를 맺는 밀알의 모습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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