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친 신호들
농부의 아이가 달팽이를 굽고 있었다. 달팽이들이 탁탁 소리 내는 것을 듣고 농부의 아이가 말했다. "가련한 동물 같으니라고! 집에 불이 났는데 노래를 부르고 있네!"<이솝우화, 달팽이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순간적인 판단을 내릴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진실은 표면 아래 감춰져 있다는 것을.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데 3초면 된다고 한다. 3초 안에 그 사람의 외모를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다. 단정한 옷차림, 밝은 표정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같이 운동하던 3살 많은 언니 K가 있었다. K는 예쁘고 화사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평범한 운동복 대신 다소 화려한 옷을 입고 운동했는데도 왠지 어색하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이 K 언니를 좋아했다. 가끔 식사하고 노래방에 가기도 했는데 언니는 술은 한 모금도 하지 않으면서도 노래방 탁자에 올라가서 귀엽게 율동해서 모두를 즐겁게 했다.
며칠 동안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서야 연락이 닿았는데. 언니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병원 치료를 하면서도 운동하러는 가끔 왔다. 경과가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얼마 후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병원에 갔을 때 언니는 처음으로 언니의 밝고 화사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삶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던 언니의 삶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는 남편의 폭력으로 수년째 별거 중이었다. 웃는 얼굴 뒤에 눈물의 나날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항상 밝은 모습만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깊은 아픔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하여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다. 사무엘 선지가 이새의 집을 찾아가 아들들을 보자고 했다. 장자 엘리압이 키가 크고 인물이 잘생겼다. 사무엘은 순간적으로 '과연 임금님 감이로구나'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사무엘상 16:7) 결국 사람의 판단으로는 왕이 될 수 없어 보이는 막내아들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데미안'에서도 평범해 보이는 데미안의 내면에 숨겨진 깊이와 지혜를 발견해 나간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구절처럼, 진정한 자아는 겉으로 보이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볼 줄 알았더라면 그 언니의 힘들었던 마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행어 중에 '볼매'라는 말이 있다.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매력적이지만 갈수록 겉과 속이 다른 사람보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볼매'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겉모습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싶다.
우리는 감정이나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를 다니고 성경 말씀을 보면서 기분이나 느낌에 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간다. 달팽이가 구워지면서 내는 탁탁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고통의 신호였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달팽이가 노래 부르는 것 같지만 슬픈 통곡의 소리였다.
'시간이 답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진실은 시간을 통해서 드러난다. 첫인상의 3초가 아니라 3년, 30년을 함께 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겉모습 너머 숨겨진 마음을 보는 내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