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5장
전 5장은 주자가 만들어 넣은 것이다. 주자는 격물치지에 대한 전(해설)을 만들어 전 5장이라고 하였다. 주자가 이렇게 한 이유는, 대학에서 먼저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과 평천하 치국 제가 수신 정심 성의 치지 격물을 말한 후, 뒤에서 차례로 해설했는데, 치지격물에 대한 해설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자는 성의에 대한 해설 앞에 격물치지에 대한 해설을 만들어 넣었고 이것이 주자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여기서는 풀이를 앞에 두고 원문을 뒤에 놓는다.
풀이
이른바 앎을 높이는 것은 사물을 연구하는 데 있다는 말은, 나의 앎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물에 다가가 그 이치를 연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 마음은 본래 신령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모두 이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치를 다 연구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앎에도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태학에서 처음 교육할 때는 배우는 사람에게 세상의 사물에 나아가 자기가 알고 있는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연구하게 하여 최고의 경지 얻기를 추구하게 하였다. 그렇게 오래도록 힘을 쓰게 되면 어느 날 확트여 세상 이치를 하나로 꿰뚫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니,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을 다 알게 되고,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위대한 작용이 완전히 밝아질 것이다. 이것을 ‘모든 사물의 이치에 도달했다.’라고 하며, 이것을 ‘앎의 지극함’이라고 한다.
주자의 원문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소위치지재격물자 언욕치오지지 재즉물이궁기리야. 개인심지령 막불유지 이천하지물 막불유리 유어리
유미궁 고기지유부진야. 시이대학시교 필사학자 즉범천하지물 막불인기이지리이익궁지 이구지호기극 지어용력지구 이일단활연환통언 즉중물지표리정추 무부도 이오심지전체대용 무불명의. 차위물격 차위지지야 (精粗에서 粗는 조 또는 추라고 읽는데, 여기서는 추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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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만들어서 끼워 넣은 이 부분을 ‘보망장’(補亡章)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것을 보충한 장이라는 뜻이다. 원본대학에는 맨 마지막 문장 ‘이것을 일러 앎의 지극함이라고 한다.’(此謂知之至也)라는 문장이 다른 곳(경 1장 7절 뒤)에 있다. 그런데 주자는 그 위치가 어색하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놓고 보망장을 앞에 끼워 넣은 것이다.
주자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대학 해설서『대학혹문』에서 보망장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주자는 여기서 앎을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誠) 하나로 모으기(敬) 위한 기초라고 한다. 성의 하기 위해서는 치지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호랑이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호랑이를 제대로 두려워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호랑이에게 직접 다가가서 겪어봐야 호랑이를 제대로 알게 되고(치지) 그래야 호랑이를 정말 두려워하게 된다(성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격물의 격格이 (책으로) 공부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직접 몸으로 경험한다는 뜻인지, 또 치지의 치致가 지식이 많아진다는 뜻인지 아니면 깊이 이해한다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주자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한 것 같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주자의 학문 체계에는 자연학과 인문학이 공존한다고 본 연구자도 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격’은 책으로 공부한다는 의미가, ‘치’는 지식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더 강해진 것 같다. 결국 후대에 주자학은 구이지학(口耳之學 : 입과 귀로만 하는 공부)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근원적으로 주자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지를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이치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한다는 주자의 생각은 도덕의 기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고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