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스몰 퀘스천의 의미
1. 스몰 퀘스천의 의미
질문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때 질문은 주로 ‘빅 퀘스천’인 경우가 많다. ‘빅 퀘스천’이라고 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주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바로 떠오른다. 빅 퀘스천이란 큰 질문이라는 뜻인데, 내 생각에 ‘크다’고 한 이유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니, ‘빅 퀘스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몇 권 나온다. <빅 픽처>의 작가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퀘스천>에는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로 시작해서 ‘중년에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은 ‘균형’의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까지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더글러스 케네디의 이런 질문들은 정말 질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서술하기 위한 단서로 사용된다.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들도 있다. 뇌과학자 김대식의 빅퀘스천(글쓴이가 ‘빅퀘스천’을 붙여 써서 여기서는 그대로 사용한다.)은 이런 것들이다.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런 빅퀘스천의 카테고리에 각각 여러 개의 큰 질문을 보여준다. (<김대식의 빅퀘스천>, 동아시아, 2014) 줄리언 바지니의 빅 퀘스천은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있는가로 시작하는데, 너 자신을 버리라는 답까지 독자에게 알려준다. <빅 퀘스천,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필로소픽, 2011)
이런 빅 퀘스천은 질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하루이틀 연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평생에 걸쳐서 연구해도 답하기 어렵다. 또 연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인문과학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자연과학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늘’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있다고 하자. 대부분 저 위에 구름이 둥둥 떠 있는 하늘을 생각할 것이다. ‘왜 하늘은 파란 색일까?’부터 ‘높이는 얼마나 될까?’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의 지혜나 종교에 관심이 많은 어떤 사람은 단박에 ‘하늘’을 도덕의 근원이나 삶의 근거로 이해하고 답을 찾아나갈 것이다. 너무 어이없다고?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러냐고? 물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빅 퀘스천 같은 질문은 어느 분야에서건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만 대답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자기 나름대로 답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개똥철학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많다.
여기서 스몰 퀘스천이란 내가 임의로 만든 용어다. 스몰 퀘스천은 빅 퀘스천에서 느낀 위압감, 무력감을 단숨에 날릴 수 있는 질문이다. 누구라도 질문할 수 있고 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아주 짧다. 누구라도 답을 할 수 있고, 그 답이 맞는지 확인하기도 쉽다.
스몰 퀘스천은 질문의 대상이 책 내용이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이고 작다. 인간, 인생, 우주 이렇게 크지 않다. 책을 읽고 질문한다고 모두 스몰 퀘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빅 퀘스천을 하는 독자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더 기술을 발전시키지 말고 내면적 기초를 회복하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글이 있다. 이 글을 읽고, “현재의 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욕망인데, 그 욕망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하자. 이 질문에는 두 가지 검토할 문제가 있다. 현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사람마다 다르다. 욕망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욕망 전반에 대한 질문이라서 대답하기가 아주 어렵다. 무엇이 욕망인가라는 질문은 빅 퀘스천이다.
스몰 퀘스천이란 이런 것들이다. 글쓴이가 말하는 ‘내면적 기초’는 무엇인가? 글쓴이는 내면적 기초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는가? 글쓴이가 생각하는 인간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인간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면 화성 탐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생활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했는데, 생활의 근본적인 변경이 지극히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다. 이런 스몰 퀘스천은 책을 꼼꼼히 읽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꼭 정답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정답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라도 추론할 수는 있다. 추론한 답이 그럴듯한지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확인할 수 있다.
스몰 퀘스천을 많이 하다 보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작은 질문을 모아보면, 어느 질문이 글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더 필요한 질문인지 느낌이 온다. 느낌이 안 와도 상관없다. 어차피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여러 작은 질문 중에서 몇 개를 고르는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글의 주제와 멀어질까봐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이제 책을 읽으면서 스몰 퀘스천을 던져 보자. 스몰 퀘스천으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질문하지 않고 읽을 때보다 책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같이 읽어보자. 내가 하는 질문과 다른 질문을 많이 만날 것이다.
이번에는 빅퀘스천과 비교하느라 스몰 퀘스천이라는 말을 많이 썼지만, 앞으로는 '작은 질문'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국어를 쓰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