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금석 논어 생각 2-군자다움이란?

제1 학이 01

by 유영희


제1 학이(學而)


편명에 대하여

▷주주 : 이 편은 <논어>의 첫 편이므로 기록한 글이 근본에 힘쓰도록 하는 뜻이 많다. 이는 곧 도에 들어가는 문이며 덕을 쌓는 터전이니 배우는 사람이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모두 16장이다.


▷금석 : 이 장을 ‘학이’라고 이름한 것은 옛사람이 책을 저술할 때, 첫 구의 한두 자를 따서 제목으로 삼은 관례에 따른 것일 뿐, 별다른 뜻은 없다. <시경>, <맹자> 등도 이와 같으며, 나머지 각 편의 명칭도 이와 같다.


▶유설 : 논어 읽은 지가 오래되어 쑥스럽지만, 두 가지 다 맞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각 편마다 이런저런 내용이 조금 섞여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주제는 있다. 주자 말대로 학이 편에는 공부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금석에서 1장의 첫 두 자를 따서 편명을 짓는다는 말도 맞다. 논어 20편의 제목이 다 그렇게 지어졌다. 결론적으로 주주와 금석, 두 가지 해석은 다 맞다. 싸우지 말자.


학이 0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주주 : 배우다(學)이라는 말은 본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의 성품은 다 선하지만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다. 뒤에 깨달은 자는 반드시 먼저 깨달은 자가 한 바를 본받아야 한다.


▷금석 :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제때에 이를 실습하여 지와 행이 함께 향상된다면 마음이 기쁘지 않겠는가?


▶유설 : ‘때때로(時)’를 주자는 ‘언제나’, 다산은 ‘제때에’라고 해석했는데, 무엇을 배우는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인 것 같다. 선생에게 배우는 것은 일상의 규범과 관련된 것이므로 깨어있는 시간 내내 한시라도 놓치지 않고 배우는 것이고, 새로운 지식은 적당한 때에 실천하는 것이다. 공자는 안회의 집에 찾아가 안회가 자신의 가르침을 온종일 실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 적이 있는데, 주자는 그것을 따랐을 것이다. 다산은 근대 직전의 지식인이므로 새로운 지식 습득에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해석했을 것이다. 시대의 차이가 해석의 차이를 만든 셈이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주주 : 벗(朋)은 동류이다. 벗이 먼 곳에서 온다면 가까이 있는 자는 말할 나위도 없다.


▷금석 : 도를 같이하는 사람이 멀리서 찾아와 함께 학문을 연마한다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유설 : 아무리 선지자라도 고향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예수도 나사렛에서는 목수 아들 취급만 당했다고 한다. 먼 데서는 찾아와도 가까이에서는 못 알아보는 수도 있으니, 멀리서 찾아온다면 가까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존경할 것이라는 주주의 입장은 사람의 실정을 좀 모르는 말이다. 금석이 깔끔하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주주 : 윤 씨는 "배움은 자신의 일이고,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노여워할 것인가? "라고 했다.


▷금석 : 자기를 알아주지 아니해도 마음에 원망함이 없으면 도덕군자가 아니겠는가?


▶유설 : 주주에서 인용한 윤 씨의 말이 설명이 자세해서 이해하기 쉽다. 배우는 일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지만, 남의 인정 여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그저 진인사대천명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알면 불행감이 좀 덜어질 것 같다.


*<주주금석 논어>에서 나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문장을 고르고, 그중에서도 일부를 필사하면서 내 생각을 곁들이고 있다. 본래 <주주금석 논어>의 본문에는 한자가 노출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가능하면 노출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 괄호로 처리할 예정이다. 임의로 문장 부호를 추가하기도 했다.


*논어와 만난 사연과 주주금석 논어에 대한 소개는 ‘<주주금석 논어> 생각’ 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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