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위정 10
제2 위정 10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행위를 보고, 그 행위를 하게 된 동기를 관찰하고, 그 마음에 즐겨하는 살피면, 그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으랴? 그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으랴?”
▷ 주주 : (사람의 인격을 알기 위해서는) 행위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보고, 행위가 선하더라도 그 행위의 동기가 선한지 더 자세히 관찰하며, 그 행위를 한 동기가 선하더라도 그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두 번 말한 것은 깊이 강조하여 밝힌 것이다. *정자가 말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른 삶의 알아들을 수 있고 이치를 궁구할 수 있으면, 이것은 사람 살피는 능력이 성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수준이 경지에 올라야 성인처럼 사람을 살필 줄 알게 된다.)
▷ 금석 : 공자는 “사람의 행위를 관찰하는 방법은 먼저 그가 행동하게 된 동기가 순수하고 올바른가를 보고, 나아가 그가 행동하는 수단이 적합하고 마땅한 것인지를 살펴본 후에 다시 그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차근차근 관찰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을 어디에 숨길 수 있겠는가? 어디에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한 사람의 행위를 관찰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 유설 : 주주와 금석이 미묘하게 다르다. 주주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그 행동의 동기, 그리고 그 동기의 진정성까지, 겉 행동부터 깊숙한 내면의 상태까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아무리 겉으로 착한 척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면, 금석은, 먼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문장에 없고, 그 행동을 하게 된 동기의 순수성을 보고, 그가 행동하는 수단과 방법을 관찰하며, 그 행동의 진정성을 살펴본다면, 그의 인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해석이 다른 것은 한문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원문을 인용하면 좋겠지만, 원문을 끌어들이면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풀이만 보고 타당성을 따져봐도 좋을 것이다. 금석에서 ‘행동하는 수단과 방법을 관찰하라.’는 것은 행위와 동기의 진정성을 판단할 때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금석은 문장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그 동기를 보고(시視)’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어색하다. 게다가 ‘보다.’라는 것은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라서 ‘동기’를 본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주주의 설명이 쉽고 편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