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미 May 11. 2024

같이 살면 표현을 하면서 살자

원래도 표현을 못했는데, 같이 사니까 더 안 하네?




단비는 경상도 남자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절대 부산 남자랑 연애하지 말자였다. 당시 내 편견이었지만, 내가 만났던 부산 남자들은 전부 표현을 하지 못했다. 본인 기준은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 부분들이 전부 내 기준에 차지 못했다. 낯간지럽다, 안 해봤다는 이유로 둘이 있을 때도 표현을 안 하는 남자들을 만나다 보니 다음 연애는 꼭 부산 사람이 아닌 남자와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단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지인으로 알고 지낼 때와 연애할 때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인들 얘기에 공감도 잘해주고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에 반했었는데, 연애를 하고 보니 나에게는 공감도 전혀 못해주는 것은 물론 어른스럽지도 않았다.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 서로 딱 한 가지를 약속했었는데, 절대 감정적인 이유로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말자는 거였다. 그리고 그 말을 먼저 꺼낸 건 단비였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 혼자 속에 쌓아뒀던 감정이 한 번에 폭발했던 것 같다. 나는 서운한 점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 주길 바랐고, 단비는 분위기를 먼저 잡아야 속 얘기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단비의 어떤 행동 때문에 내가 서운함을 느끼면 나는 바로 그 상황에서 "오빠가 이렇게 하면 난 좀 속상해."라고 바로 말한다.



사람의 기억은 휘발되기 때문에 그 순간 바로 말하지 않으면 어떤 이유 때문에 서운함을 느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서운함은 마음에 쌓이게 되더라. 그 감정들이 쌓이면 '성격 차이'라는 이유로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쌓인 서운함을 상대에게 구구절절 다 털어놓기엔 이미 너무 늦었고, 내가 너무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같이 살면서는 서로 부딪히는 일이 이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에 사소한 감정이 쌓이지 않도록 더 많은 대화를 하자고 했었다. 같이 살아보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매주 주말마다 함께 술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는 소소한 일상을 꿈궜지만, 현실은 주말에 각자 할 일을 하느라 표현은 더 줄어들었다. 평일엔 서로 퇴근하고 집에 와 피곤한 시간에 저녁을 먹으면 각자 할 일을 하기 바빴다. 연애할 때는 카톡이나 통화로 직장의 고충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같이 살고 나니까 오히려 대화를 더 안 하게 되는 기이한 현실.




지금은 TV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중간에 멈추고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지만, 그때는 폰만 보면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해와 서운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일상이 아닌 것들이 일상이 되기까지는 충분한 적응 기간이 필요할 텐데, 그걸 몰라 서로를 서운하게 한 건 아닐까.




지금은 단비도 이건 서운해! 라며 시시콜콜 말하는 사람이 됐다. 표현은 자주 할수록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