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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Apr 27. 2024

결혼은 절대 못하겠다

동거를 통해 확실해진 비혼주의.




단비는 다음날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년 전에 '청년희망적금'을 둘이서 25만 원씩 내 통장에 같이 모았는데, 3월 중순에 만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만기가 되면, 전부 단비에게 주기로 했었다. 그리고 해고는 계획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내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원래라면 반씩 넣은 돈이니 얼마나 백수일지도 모르는 이 기간 동안은 내가 가지고 있고 싶다고 단비에게 내 딴에는 진지하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당연히 단비는 또 화를 냈다.




내 돈인데, 왜 네가 소유권을 주장하냐




여기서 우리의 경제관념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반반 동거라 주장하면서 내가 받은 전세 대출은 이자를 같이 내고 있으니 반반이 맞고. 각각 넣은 돈은 만기 되면 본인에게 주기로 사전에 합의를 했으니 본인의 돈이라는 것. 나는 지금 내 상황이 상황이니 조금 억지일 수는 있지만, 배려를 요청한 것인데 단비에게는 강압으로 느껴졌다는 것.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도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단비는 너무 화가 났는지 대화를 단절하고 담배를 피우러 갔다.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대화를 단절하는 태도가 너무 별로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그 주제로 대화를 하진 않았지만, 단비는 빠른 시일 내로 본인에게 빌려간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상환계획서(?)를 써서 보여 달라고 했다.








단비랑 동거 이전에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이미 선포도 했다. 내가 내 부모님,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를 못하는데 남의 부모님과 남을 어떻게 책임진단 말인가. (단비도 비혼주의다. 서로 합의(?) 후에 연애를 시작했다.)




당장 내일의 내 미래도 어떻게 굴러 갈지 알 수가 없는데,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도저히 될 것 같지 않다. 한 사람과 맞추며 사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결혼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자주 얘기하지만, 그 미래에 '결혼'이란 단어는 없다. 각자의 부모님은 각자가 챙기고, 각자의 가족도 각자가 챙긴다. 단비도 나도 각자의 집에서 '결혼'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각자 알아서 서로에게 닿기 전에 차단한다. 단비는 이미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해 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 평생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부모님께 보여드릴 의사는 있다. 단비가 준비가 된다면)




각자의 세상에서 30년 이상 달리 살아왔던 사람들이 만나면 이렇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날마다 생긴다. 서로 살다 보면 맞춰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왜인지 맞춰가는 게 아니라 '양보'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비도 나도.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앞으로도 평생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왔으니. 다만, 단비(혹은 내가) 이런 사람이니 이런 부분들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배려와 양보로 지내게 되겠지. 실제로 동거 3년 차가 되니 서로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 많이 양보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으며, 단비는 술 마실 때 아주 가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꼭 얘기해 달라고 한다. 나를 놓아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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