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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Apr 13. 2024

어른스러운 연상을 만나고 싶었는데,

동거 후 남보다 못한 관계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두 번째 학원을 다니면서도 학원 행정실 알바를 계속했기 때문에 내가 10시쯤 집에 들어왔다는 거다. 동거 전 단비는 10시면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오면 자고 있는 날도 있었고, 내가 씻는 사이에 잠드는 날도 있었다. 서로 부딪히는 시간이 없으니 냉전 상태였어도 대화할 시간이 적어 금이 간 우리 사이가 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대화하지 않는 동안 단비가 내 상황을 이해해 준 건지, 참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부하는 8개월 동안 싸우지 않은 날들도 더러 있었다. 후에 얘기해 보니 단비도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라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행동을 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 돈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동거 시작과 동시에 현실이 되고 나니 끔찍했다.




나도 처음부터 동거 시작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은 아니었다. 회사와 의견 충돌이 있었고, 좁혀지지 않아 홧김에 퇴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버텼다면 다른 미래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이 없었을 테니 그만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단비도 주말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이사 후 한동안은 주말마다 지인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었다. 술만 먹으면 헛소리를 해대는 단비를 단속하긴 쉽지 않았다. 지인들과 있을 때도 한 마디씩 보탰기 때문이다.




굳이 정리 업체를 불렀어야 했냐.


굳이 입주 청소를 돈 주고 했어야 했냐.


굳이 시스템 행거를 맞춰야 했냐.




매일 청소기 돌리는 건 내 담당이다. 로봇청소기를 사지 않는 조건으로 종종 청소기를 돌려주기로 사전에 합의했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무선 청소기를 샀다는 것. 투룸에 살 땐 공간이 크지 않아 미니 청소기를 사용했었는데, 그걸 그대로 쓰자고 하더라..




그러면서 무슨 입주 청소를 둘이 하재..


어차피 대충 청소해 주는 로봇 청소기는 살 필요 없다고 하질 않나..




요리와 주방 청소는 단비 담당이었는데, 집들이를 하면 요리를 하게 되니 그렇게 생색을 내더라. 내가 이렇게 했고, 저렇게 했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통에 지인들에게 '단비한테 잘해라.'라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지인들이 뒷정리를 도와주려고 하면 어차피 본인이 할 거니까 그냥 놔두고 가라고 한다. 그래놓고 설거지한 생색은 나한테 낸다. 나도 집들이를 위해 하루 전에 집 청소 다 하고, 당일에 청소기도 돌리고. 왔다 가면 또 청소기와 물걸레 청소를 해야 하는데. 넌 술 취하면 설거지 다음날로 미루고, 씻지도 않고 그냥 자잖아.








피곤 한 날에도 술에 만취한 날에도 나는 무조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 사람이다. 단비는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침대에 눕고 보는 사람이다.




각자 30년이 넘는 인생을 살다가 한 집에서 살다 보니 부딪히는 경제관념, 사상, 가치관 등을 맞춰가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 물론 대화를 통해 좁혀지지 않는 의견은 그대로 둔다. 왜 몇몇 사람들이 결혼 전 동거를 해보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느꼈다. 단비가 연애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르고, 동거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른데 대체 결혼은 다들 어떻게 하는 걸까.




지금은 단비도 술 취해도 씻고 눕는 사람이 됐다. 찬 바닥에서 자기 싫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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