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후 위기가 끝도 없네
2월 말 이사를 끝내고 고민 끝에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에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도록 처리를 해준다고 했고, 나도 그동안 공부해보고 싶었던 분야가 있어서 반년 정도 공부해서 직종 변경 후 재취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1차 문제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거기서 위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직장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비자발적 퇴사 처리가 되면 지원금을 다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라 자발적 퇴사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원한다면 6월까지 휴직으로 처리했다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부정수급 관련해서는 자신들이 책임질 수 없으니 나더러 선택하라고 하더라. 고민 끝에 실업급여를 포기하기로 했다.
계획과는 다르게 내가 국비학원으로 공부를 하는 동안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청년지원금이랑 알바도 하고 어떻게 최소한의 수익을 채우긴 채웠는데, 공동 생활비도 내야 했고 이사 한지 얼마 안 돼서 이곳저곳 나갈 지출이 많았다. 단비는 처음에 이런 내 상황을 고려해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약속했던 금액의 반을 빌려줬다.
2차 문제는 나도 돈을 빌려줬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술만 먹으면 집에 와서 돈을 갚으라고 닦달을 한다는 데에 있었다. 가뜩이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는데,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주 2~3회 정도 술을 먹고 오는 단비는 항상 술에 취해 돈 얘기를 했다. 언제 갚을 거냐고. 언제 일할 거냐고. 일 시작하면 어떻게 갚을 거냐고.
이건 진짜 생각지도 못했던 스트레스였다. 당시 국비 학원에서 디자인과 영상편집을 배웠는데, 과제도 많고 포트폴리오 작업물을 만들 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다. 한 번도 배운 적 없던 분야라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거기에 돈 관련 문제까지 더해지니까 진짜 사람이 미치겠더라.
그 와중에 배우고 있던 학원에서 등록 당시 안내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영상 편집 과정이 일주일 만에 빠르게 끝나버렸고. 원하는 만큼 영상 편집에 대해 공부하지 못한 나는 두 번째 학원을 고민하게 됐다. (그때 직업훈련생계비대출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제도를 활용했다.) 그때 단비는 빨리 취업하는 게 맞지 지금 니 상황에 다른 걸 더 공부한다는 게 맞냐고 나를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엄청 순화해서 적은 거고 당시 나한텐 진짜 당장 갈라서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였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두 번째 학원에서 무조건 열심히 해서 제일 빨리 취업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
결혼은 현실이라더니. 동거도 현실이더라. 인간관계에 돈이란 놈은 최악이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돈 없는 상황에 몰리면 나도, 상대도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단비는 본인이 내가 힘든 당시 돈을 빌려줬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한다. 자랑인 건 맞는데, 왜 나한테 죽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줬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걸까. 사람의 기억은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