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바로 해야지, 단비야
연애와 동거는 확실히 다르다. 이건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동거와 결혼도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낼 때와 연인으로 지낼 때 사람이 다르게 느껴지듯, 나한테 단비는 동거 전후로 나뉜다. 연애를 하면서 단비가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냉정할 때도 많았지만, 본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 대체로 다정다감한 편이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지만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인 사람.
중소기업청년 전세대출을 이용했고, 집도 내가 알아봤기 때문에 집도 대출도 내 명의이다. 나는 혼자 산 세월이 있기 때문에 살림살이 대부분도 내가 들고 왔다. 주방용품은 아예 살 필요가 없었고, 자잘한 드라이기, 책상, 생필품(휴지, 수건, 세제 등등) 등도 다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자취(독립)가 처음인 단비는 이걸 반반동거라고 말한다.
음, 아무래도 내가 아는 '반반'의 의미와 사뭇 다른 것 같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문제로 크게 다투고 현재까지 저 부분에 대해 다시 얘기를 해 본 적은 없다. 서로 감정이 너무 상해서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내가 더 해왔다!' 이런 생색을 내려는 의도는 없지만, '나도 똑같이 해왔어!'라고 주장하는 단비가 지금도 웃기긴 하다. 그냥 고맙다고만 해도 그렇게까지 다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여러 예시를 들어 반반이 아님을 이해시켜 보려 했으나 당시 단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똥고집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임.
나는 동거든 결혼이든 혼자 살아본 사람과 하는 것을 추천한다. 혼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독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단비와의 대화가 숨 막힐 때가 종종 있었다(지금은 동거 3년 차라 없어짐). 결혼 전 동거는 가급적이면 해봤으면 좋겠다. 연애 때와 정말 다른 인격체를 볼 수 있다.
대화를 자주 하는 커플이라면 이런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서로 고집이 있는 데다 본인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에 뜻을 굽힐 생각이 없는 고집쟁이 커플이라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기약 없는 시간을 버틸 수 있다면, 흘러가는 시간에 맡기는 것도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 감정을 쌓아두는 것은 독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 나중에 꼭 안 좋은 방향으로 터져 큰 싸움이 되더라.
동거 후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재정립된다는 데에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단비를 이해하는데 연애 기간 포함 4년 이상 시간을 쏟았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는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그렇다. 가끔 이렇게까지 화를 내야하나? 하는 부분도 더러 있다(2화 참고). 가전가구 준비하면서 겪을 최악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