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념의 차이
앞으로 둘이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집을 아늑하고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내 집이 아니니 리모델링까지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전가구는 내 취향대로 사서 꾸밀 수 있었으니까.
근데 이게 혼자만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가전을 구매하면서부터 알게 됐다. 단비는 첫 독립이었기 때문에 예쁘게 꾸며 놓고 살 생각보다 그냥 '살만 한 집'을 꾸미기가 목표였던 것 같다. 그냥 대충 사람 집 같은 구색만 맞추면 되지. 하는 가벼운 생각.
나는 건조기와 로봇청소기는 꼭 사고 싶었으나 단비는 건조기도 필요 없다며 냉장고와 세탁기 정도만 사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집에 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해보고 살아온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 숨 막힐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경험에 의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단비는 '굳이? 왜?'라는 의견을 고집했다.
좁은 집이 아니라 넓은 집이니 나는 워시타워까지는 아니어도 건조기를 따로 사서 베란다에 두고 싶었다. 장마철에도 보송한 수건을 쓰고 싶기도 했고, 뭣보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면 빨래가 많이 늘 텐데 빨리 정리해 두면 좋잖아. 냉장고도 비싼 것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한 제품을 사고 싶었다. 근데 웬 걸. 단비는 적당이고 나발이고 그냥 저렴한, 냉장고 구실만 할 수 있는 40만 원 대 냉장고를 사자고 하더라. (원룸에 옵션으로 들어가는 정도의 냉장고였음.)
심지어 제품을 찾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런 정도면 되지 않아?'라고 말만 하며 어떤 제품인지 찾아보지도 않고 나에게 일임하는 듯한 태도부터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세대출을 알아보려 이 은행, 저 은행 뛰어다닌 것도 나 혼자. 집 구하려고 발품 판 것도 나 혼자. 온갖 설움이 폭발했었다.
같이 살자고 구하는 집인데, 이렇게 나한테 다 떠맡기면 몸만 들어오겠다는 말인가? 나랑 같이 사는 집을 꿈꾸는 거야? 아니면 본인이 자취할 집을 대충 구색만 맞추자는 거야? 그럴 거면 왜 같이 살자고 했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미 집을 가계약한 상태로 가전과 가구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무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니까. 흔히 결혼 준비를 하면서 왜 파혼까지 가지 못하는지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단비와 그때에 대해 얘기했는데, 우리 둘 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로 감정적으로도 너무 지쳤던 때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와도 저 고난의 시간을 다시 이겨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퍼즐조각처럼 나와 맞는 단비 외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집 구하기. 가전 구매하기. 가구 채우기.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라면 무조건 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