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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Mar 18. 2024

동거를 시작한 이유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부모님과 제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대학을 다니고 싶었던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함께 살았던 친구 두 명과 함께 총 세 명이서 함께 살았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스물다섯인가 여섯부터 혼자 살게 됐다.




적게는 1년 많게는 2년 단위로 나는 이사를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잦은 이사가 너무 힘들어 이번에는 꼭 전세로 이사를 해야지 생각했다. 집이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내 삶도 안정적이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퇴사와 이사를 반복하면서 차라리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부모님과 따로 산 세월이 너무 길어 2박 3일로 놀러 가도 결국 싸우는 나를 보며





부모님과는 절대 같이 못살겠다





고 생각했다.











장거리 연애는 자신 없던 내가 현재 남자친구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남자친구는 자취를 해 본 적도, 부모님과 따로 지내본 적도 없었다(군대 제외). 그 부분이 제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내가 친구들과 살아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지.





집을 구하는 것부터 대출까지 전부 내 몫이었다. 집은 내 명의로 내가 전세대출을 받아서 구했다. 대출부터 쉽지 않았지만 가전을 구매하는 것부터 진짜 고통의 시작이었다. 우선 내가 집을 구하고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는 남자친구와 다툴 일이 전혀 없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가전과 가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온통 다툴 일 투성이었다. 내가 혼자 살면서 쓰던 물건들을 안 가지고 왔으면 헤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자취나 독립 관련해서 남자친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전혀 없었다. 내가 다섯 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건지. 다섯 살 어린 사람을 만나는 건지 분간이 안 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이었나? 동거 결심 전에 알았다면 같이 살 생각은 절대 안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은 덤이었다.





후에 알았지만, 남자친구는(이하 단비) 동거나 독립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졸라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했다고. 사귀는 동안 전혀 안 싸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만난 중에 같이 살 집을 구하면서 평생 싸울 건 그때 다 싸운 기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은 안 싸우고 마냥 사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단비라는 별명을 붙인 건, 내 기준 진짜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릴 때가 있어서다. 내 기준엔 고집인데 본인은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더라. 서로가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젠 이해하기를 포기한 상태다. 서로를 이해 못 하는 상태로 지내고 있다. 존중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가는 부분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있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 아직은 많다는 의미겠지. 인간관계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으나. 연애와 동거는 분명하게 달랐다. 나는 결혼 전 동거를 격하게, 완전히 찬성하는 사람이다. 연애와 같이 사는 건 다르다.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좋은 상황에서도.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았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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