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일기장 1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숲 Feb 09. 2021

맨발의 친구들

남아공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영국, 페루, 미국, 스페인, 한국, 남아공, 프랑스,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 까지 여러 국적에서 온 사람들과 같이 지냈다. 피부색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사람들. '아, 영어 못하는 데 어떻게 생활하지?' 막막하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에 낯선 사람들이라니'하며 설레기도 했다. 

생활방식이 전혀 달라 놀랐다. 기억에 남는 것 두 가지가 '설거지' / '맨발' 이다. 한국에서는 설거지를 할 때 흐르는 물에 식기를 헹군다. 남아공에서는 물을 큰 싱크대에 받아놓고 고여있는 물에 식기를 헹군다. 마지막으로는 천으로 식기에 있는 물기를 닦아 낸다. 특히 기숙사에서는 설거지 당번이 모든 기숙사생의 그릇을 닦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대로 설거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똑똑하고 상식적인 웨이에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 왜 그릇을 물로 안 헹궈?' 그러자 웨이가 하는 말. '원래 그러잖아?'. 이후로 남아공식(?) 설거지를 성실히 이행했다. 

그 곳 친구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맨발을 즐긴다. 유리에 찔리면 어떻게 하지? 똥이라도 밝으면 어떻게 해! 하며 불안해하며 지켜보곤 했다. 교회에 갈 때에도, 쇼핑몰에 갈 때도, 운동장에서 운동을 할 때도 맨발이다. 심지어 발바닥이 까만채로 침대로 들어가 자는 것도 봤다. "She washes her feet every night!" 친구들이 날 향해 하던 말이다.  "They never wash thier feet!" 내가 할 말이었다. 언제였더라. 신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슬리퍼를 신고 잔디밭에 나가 왼 쪽 슬리퍼를 슬쩍 벗고 잔디위에 발바닥을 살짝 대어봤다. 차갑고 습기가 있었다. 수십개의 잔디가 발바닥에서 짓눌렸다. 닭살이 살짝 돋고 눈이 감겼다.

남아공 때 맨발(나 아닌 사진도 있다요)

힐(hill)에 올라가 누워 밤하늘을 봤고, 숙소 앞 잔디밭에 앉아 얘기했다. 그들처럼 쇼핑몰에도 맨발로 갔다. 나무 그늘에 앉아 머리 염색을 하고 신을 벗고 산책을 했다. 꼭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무엇을 하던 장소에 구애받지 않았다. 바닥이 있으면 앉고 잔디가 있으면 걸었다. 신발을 벗으니 많은 공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소소한 즐거움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맨발로 다니기'는 그들을 따라했던 일상의 작은 부분이지만 생활 속 많은 부분을 그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자기 전 발을 씻지만, 까만 발바닥으로 잠이 들었던 그 친구들이 그립다. 


이전 16화 흐르자, 잔잔히 끝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