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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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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Feb 05. 2021

흐르자, 잔잔히 끝까지

파도의 잔물결

잔물결은 요란하게 요동 치치도, 고여있지도 않다. 적당히 또 꾸준히 흐르는 물. 제주에 있을 때 잔물결의 풍경에 빠져 한참 바다를 걸었다. 나도 잔물결 같았으면. 파도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마냥 고인 물 같아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아 흐르는구나' 알 수 있는 잔물결만큼이라도 내가 흐르고 있다면 만족한다. 나는 지금 흐르고 있을까?


아주 잔잔한 파도의 모습

시선이 발끝에 차인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떤 존재인가. 되뇌다 보면 시선을 아래로 아래로 떨구게 된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긍정의 신호를 보내도 한계가 있다.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 그러다 보면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물길이 의식을 깨운다. '고개 숙이지 마'.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아래를 보며 걸었다. 고민이 있으면 나오는 버릇이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하늘마저 아름다웠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물결 속이, 높은 하늘 아래가 편안했다. 물이 흘러도 하늘이 높아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니었으니까.     

구름을 뚫고 나오는 빛

한 없이 물결을 바라봤던 그때.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결이 부러웠던 그때. 그때가 떠오른다. 평안을 다짐해도 마음이 요동치는 오늘. 그때의 물결을 기억하자. 자유로웠고 아름다웠고 편안했던 그때. 그리고 흐르자. 잔물결처럼만 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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