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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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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Jan 31. 2021

감사

꿈뻑꿈뻑 눈이 감긴다. 오늘 일어난 굉장한 일들이 기분 좋은 피로감을 준다. 아침부터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 온 연락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났다. 결혼 날짜를 오늘 갑작스레 정하게 되었다. 이구와 나는 12월 즈음으로 결혼식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전화로 '6월 26일에 해' 라며 날짜까지 찍어주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어차피 할 거 일찍 하라는 게 부모님 말씀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구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이구의 부모님께도 전했다. 모두 오케이. 그렇게 결혼식 날짜가 하루아침에 정해졌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이구랑 내가 결혼식을 차일피일 미루고 뭉그적 대니까 부모님께서 딱! 정해주신 것 같다. 날짜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부모님은 내게 어려운 존재였다. 미국에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안부 연락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먼저 하셔야 간신히 전화를 받는 정도였다. 그게 마음이 좋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마음 어려운 것만 생각했다. 내게 부모님은 '성과를 원하시는 분'이었다. 전화를 하거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야. 부모는 너에게 모든 것이 열려 있어. 너를 꾸짖는 것도 널 사랑해서야. 너는 부모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냥 편하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죄송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오해하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을. 내가 부모님을 어려워하게 된 데에는 자신들의 탓도 있다며 미안한 기색을 내보이셨다. 무척이나 화가 나 있으셨고, 그건 사랑이었다.

결혼 전 부모님과 오해를 풀 수 있게 되어,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교훈, 훈계, 책망, 징계를 달게 받을 수 있게 되어, 그 모든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앞으로 더 교훈해주시고 훈계해달라고 했다. 그 말씀을 듣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길이다. 앞으로 가족 단체 카톡방 시끄럽게 예정이다. 소식도 올리고, 이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알려드리고 말이다. 부모님께서 적응하셔야 할 텐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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