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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기장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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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숲 Jan 29. 2021

어두움과 고립이 주는 편안함

"불 좀 키고 커튼 좀 치자!". 간접조명의 노란불빛만 켜져 있는 내 방. 엄마는 휙휙 커튼을 치며 말한다. 나 혼자 집에 있을 땐 주방과 방 안 간접조명 하나만 켜 놓곤 했다. 아니면 아예 모든 불을 꺼놓고 TV만 켜 놓던가. 엄마는 나와는 정반대이다. 커튼을 치고 환기를 시키고 불로 거실을 밝힌다. 엄마는 시원하고 밝은 것에서 상쾌함을 느낀다. 반대로 나는 어두움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방에 혼자 있어도 은은한 어두움이 공간을 더욱 개인적인 곳으로 만들어 준다. 혼자만의 공간이 내겐 중요해서 가족들과 함께 살 땐 방문도 꼭꼭 닫아 나를 고립시키곤 했다. 빛의 부재가 나를 방안에 더욱 홀로 두는 것 같아 어두움이 편안했다.

주말에는 대청소를 했다. 그야말로 빛이 집 안으로 쏟아진다. 바람이 창문들로 몰아친다. 심지어 현관문까지 열어 환기를 시킨다. "엄마, 현관문으로 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 벌레라도 들어오면!" 이불속에 숨어 소리 지른다. 아빠가 방문을 벌컥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위이이이----잉' 청소기 소리. 청소는 해야 하고, 나는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니 불평할 수는 없다.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일어나 청소해!'라고 하지 않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독립을 했다. 이사하고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이 창문이었다. 집이 아파트 복도식인데 아파트로 나 있는 창이 모두 3중창이다. 내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한 집이다. 제대로 공사를 했으면 기존 창을 떼어내고 새로운 창을 달아야 한다. 공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아 창이 3개라고 한다. 오히려 좋았다. 더 안전한 느낌이라서.

집의 모든 공간이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불이 꺼져 있어도, 환기를 안 시켜도 괜찮은 곳.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의무적으로 환기를 시키고 집안을 환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야 것만 같아서. 이제는 '환기를 언제 했지?' 기억이 안 난다. 현관문 잠금장치를 세 개 모두 잠가놓고 있다. 복도로 있는 창은 닫아놓고 거의 건들지 않는다. 베란다 문도, 창문도 꼭꼭 닫아 놓는다. 한동안 화장실을 때도 집에 혼자 있어도 문을 닫고 잠갔다(이젠 전체가 편안해져서 문을 열어놓고 샤워를 하기도 한다).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한다. 현관문 잠금장치가 모두 잘 잠겨있는지, 베란다 문이 잘 닫혀있는지 확인한다.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간접조명을 켠다. '하-' 마음이 편안하다. 아무도, 아무것도 집으로 들어올 일 없고 어두움이 주는 안락함 속에 나 혼자 있다. 하루의 끝을 가무스름한 고립으로 마무리한다. 당분간 이 평안을 맘껏 누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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