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담을 수밖에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Haast pass를 넘기 전 캠핑을 하고 일어났다. 어제도 잠에 못 들어 2시가 넘어 잔 것 같다. 피곤하지만 오늘도 갈길이 머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춥다. 새벽 2시까지도 안 추운데 3시가 넘어가면서 추워지나 보다. 수프를 끓여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했다. Hasst pass를 넘으면 큰 고개는 없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짐을 챙겨 출발. 

과연 얼마나 높은 언덕이 있을까. 출발이 꽤 좋게 시작됐다. 이제 곧 오르막이 있을 텐데. 하는 사이 갑자기 Hasst pass라는 팻말이 보였다. 출발한 지 5킬로도 안돼서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그리 힘겹지 않게 말이다. 허허. 주변에 구경할 게 있나 볼려는데 다른 자전거 여행객이 쉬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사람은 어제 cameron flat에서 쉬었단다. 와나카 쪽으로 가면 샌드플라이가 없을 거라는 희소식을 전해준다. 인사를 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중간에 cameron flat에 들러 물을 챙겼다. 어제는 폭포수를 담아 요리할 때 썼는데 끓여 먹지 않으면 영 불안해서 안 먹다가 여기서 물을 보충했다.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 와나카 호수가 보이길 기대했다. 출발한 지 35Km 지났을까? 블루 사파이어가 저런 빛깔일까 싶을 정도의 짙은 푸른빛의 청아한 호수가 보인다. 그 옆으로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는데 아. 이제 뉴질랜드 호수 뭐 별거 볼 거 있나 하는 나에게 탄성을 자아냈다. 

눈을 뗄 수가 없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다가 어차피 점심때도 된 거 점심이나 먹고 가자는 생각으로 앉아서 호수를 보며 식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와.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빵을 먹고는 그래도 바로 출발하기 아쉬워 삼각대를 펼쳐 놓고 혼자 원맨쇼를 하며 셀카를 찍고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움직였다. 

원맨쇼 중이심....

그 부분이 호수 초입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장관이 이어졌다. 설마 아름다운 경치가 라이딩에 방해가 될 줄은 몰랐다.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다. 풀 hd 영상으로도 만끽하기 어려울 듯한 와나카 호수를 옆으로 지나며 연신 감탄했다. Imax로 보면 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물빛 위로 비치는 산의 노랗고 푸른빛이 아름다운 수채화 같았다. 한 관광객은 아예 활짝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자연의 풀 hd를 감상하며 식사를 하다니.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지니 페달 밟는 속도가 느려진다.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출발. the neck에 도달했다. 여길 지나면 hawea 호수가 펼쳐진다. 와나카 호수를 본 직후라 그다지 기대 안 했는데 어찌 이런 아름다운 호수가 두 개나 같은 곳에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하웨아 호수도 와나카 못지않게 아름답다. 

몇 번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데 또 바퀴에 펑크가 났다. 이런 젠장. 안 그래도 늦어졌는데 바퀴까지 말썽이다. 어제 타이어를 갈면서 혹시 가시 같은 게 있나 확인을 안 했었는데 그 탓일까? 어쨌든 빨리 때워야 한다. 짐을 풀고 타이어를 빼내는 사이 어떤 사람이 근처에 차를 멈췄다.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 외국인은 옆에서 호수를 구경하는 듯하더니 내가 펑크 난 곳을 찾기 힘들어 하자 차에서 냄비를 꺼내 호수 물을 받아왔다. 나한테도 물통이 있긴 했으나 언제 물이 떨어질지 몰라 안 썼는데 이런 호의를 베풀어 준거다. 마음이 급했던 탓에 고맙다고 인사는 했으나 감사의 인사가 부족했던 느낌이다.

그 외국인은 잠시 수영이나 하겠다며 호수로 들어갔다(음?). 나는 냄비와 물 덕에 쉽게 펑크 난 곳을 찾았다. 왜 펑크가 난거지. 타이어를 확인해 봐도 뭔가 뚫고 들어온 듯한 게 없었는데 말이다. 펑크 때우기는 처음이라 잘 때워지려나 걱정이다. 사포질을 하고 풀을 발라 잠시 말린 후 패치 고무를 붙였다. 제발 와나카 갈 때까지 버텨주길!

펑크를 다 때우고 나자 아까 그 친구가 올라왔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이름을 물었다. Pierre 피에라는 그 청년은 프랑스 사람이다. 자긴 차를 사서 여행 중이란다. 한번 기회가 있으면 나도 차를 몰고 잠시 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홀연히 피에르가 떠나고 나는 다시 짐을 챙겼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 갈길이 아직 멀다. 하지만 도대체 이 풍경은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계속 펼쳐지는 장관이 날 붙잡는다. 오토바이라도 렌트해서 다시 오고 싶다.

힘겹게 페달을 밟는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고 주행거리는 80Km에 달했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간다. 게다가 뒤로 두고 온 풍경들이 못내 아쉽다. 

미친 듯이 밟아 드디어 와나카에 도착했다. 길고 길었다. 거의 90 Km를 달린 것 같다. 바로 홀리데이 파크를 찾았다. 주인이 동양사람이었는데 뭔가 쌀쌀맞다. 게다가 뭐 시키는 건 많은지 무슨 종이를 주더니 내일 아침까지 갖다 줘야 한단다. 이게 뭔데.

모르겠고 일단 텐트를 치고 짐을 때려 넣은 후 마트로 갔다. 그동안 큰 마트가 없었는데 큰 마트에 오니 모든 상품 가격들이 저렴해졌다. 3불에 샀던 수프가 1불이라니..... 모처럼 고기를 먹자 싶어 소고기를 집고 맥주와 과일 몇 개를 집었다. 하루 더 쉴 계획이니 오늘은 이 정도만 사자.

캠핑장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었다. 급 졸리다.

주행거리: 9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