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ㄱ'자도 모르는 한 청년의 고난의 유익에 관한 기독교적 묵상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다른 브런치 글들을 잘 읽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브런치를 구독한 적은 더 없었다. 그러다 지난번에 쓴 글에 라이킷을 눌러준 분들을 살펴보다 한 브런치 작가 분의 자기소개에 두 눈이 멈췄다.
5년차 희귀난치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입니다. 청년의 때에 통증과 치열하게 싸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까지. 절망과 희망과 기적을 담은 투병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소민. 브런치스토리. 작가소개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이 병만큼은 절대로 걸리고 싶지 않다." 유튜브에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맞서 투병 중인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저주받은 질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이 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뚜렷한 치료법도 없는 이 병과 치열하게 싸워가고 있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궁금증에 이끌려 이 분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참고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걸리면 아래와 같은 통증을 거의 24시간 내내 느낀다.
- 뼈가 꺾이면서 부러져나가는 통증
- 뼈에 못이 박히는 통증
- 뼈 자체가 옥죄이는 통증
-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
- 망치 사이에 끼인 느낌
- 전기에 '빡'하고 감전된 느낌
- 샤워기 물이 쇠구슬같이 느껴지고, 물이 발에 닿으면 발 전체가 전기에 감염되는 느낌
- 발가락을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발가락 위에 수십 개의 바늘이 박혀있는 것 같음
김소민, 브런치스토리. 양말 신는 것이 소원인 청년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돌발통은 아래와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가장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도 이 통증을 다 잡을 수 없다.
칼로 마구 그어버리고, 불을 붙인 뒤 벗겨져서 진물이 난 피부에 소독액이 뿌려지고 있는 것 같음. 뼈는 드릴로 뚫고 면도날을 발 전체에 박아 놓은 것 같음.
김소민, 브런치스토리. 양말 신는 것이 소원인 청년.
한 두 편의 글만 읽고 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헉 소리가 절로 나는 통증 묘사와 뛰어난 필력에 빠져 나는 대여섯 편의 글을 더 읽고 나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 않는 질문들...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겁니까?
하나님은 정말 선하십니까?
이미 지나간 고난을(때로는 기적과 같이) 돌이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살아계심을, 왜 우리가 그러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고난의 터널 한가운데 선 이들, 끝이 날래야 날 수도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에서 처럼 자녀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에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 내 입술에서는 시편 기자와 같이 어떤 탄식의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0:1)
예전에 들은 설교 말씀을 기억해 보고 고통의 문제에 관한 책을 읽어 보아도 이 문제에 대한 아주 속 시원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에는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다음 날 밤 나는 김소민 님이 쓴 나머지 글들을 읽기 시작했고 이 분이 나와 같은 기독교인인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전 날 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들이 다시금 내게 찾아와 답을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내가 알기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 한 사람이 글로 써 내려간 고차원의 믿음의 고백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품은 천국을 향한 소망, 불과 같은 시련을 통과하며 드리는 정금과 같은 감사, 변하지 않는 상황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심하지 않는 순전한 믿음 - 이 것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간증'이나 '논리적인 변증서' 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내게 증거 해주었다.
비록 내게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내게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멈추시지 않네 하나님은 새일 행하시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고난의 ‘이유'에 대한 답을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인생의 디폴트 값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의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이 더 귀하다"라는 그 고백의 깊은 뜻에도 조금이나마 닿아볼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 지난 두 달간의 길고 얕은 묵상을 통해 깨달은 고난의 7가지 유익에 대해 나누어보려 한다.
여전히 고난은 피하고 싶은 부족한 사람에게 고난의 유익이라는 귀한 묵상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