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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Oct 27. 2020

정 떨어지게 하는 최악의 인사

 밖에서 사람 만나는 일을 하거나,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 많으면 수백 번까지 해야 하는 일이 인사다. 매우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인사도 있다.

 그중 괜히 사람 기분 안 좋게 하는 대표적인 인사말이 걱정해주는 눈빛으로 상대방 얼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이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건네는 인사말이지만 우리 다 알지 않나. 그냥 으레 하는 인사말이다. 상대방이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맘고생을 하느라 얼굴이 상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아무 일도 없고, 얼굴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던 사람도 누군가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기분이 가라앉는다. ‘내 얼굴이 그렇게 보기 안 좋나?’, ‘내 인상이 안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하지 않던 고민을 하게 된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세수를 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 정말 어딘가 상한 거 같고, 여기저기 단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만약 상대가 실제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얼굴이 상한 경우라면 이런 인사말은 더 안 좋다. ‘내가 힘드니까 이제 진짜 얼굴까지 안 좋아졌나 보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속상해진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로해준답시고 한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로는커녕 오히려 우울감만 더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보다 사람 더 기분 안 좋게 하는 인사가 있다. 얼마 전 길을 가다 우연히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를 10여 년 만에 마주친 적이 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본 얼굴이라 반갑게 다가갔는데, 그 동료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너도 나이는 어쩔 수가 없구나.”


 세월이 흘렀는데 나라고 다르겠냐며 짧게 안부를 묻고 헤어졌는데 그때까지 좋던 기분이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내가 그렇게 늙었나?’, ‘어디가 늙은 거지?’ 갑자기 내가 확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자연의 섭리인 노화를 누가 막을 수 있겠나. 나이가 들면 늙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걸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래도 가급적이면 천천히 늙고 싶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더 젊었으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데, 굳이 상대방에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걸 일깨워줄 필요가 있을까? 사실 별로 늙지도 않았고,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뒤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기왕이면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좋게 얘기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넌 예전이랑 똑같구나. 어쩌면 그렇게 변한 게 없냐.”

“넌 전보다 더 멋있어졌구나.”


 이런 말 들으면 인사치레라는 걸 알면서도 누구나 기분이 좋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 조각 남아 즐거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마음이 즐거우니 대화의 분위기도 더 좋아지고, 그 사람과의 만남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 되는 인사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렇게 삭았어?”

“흰머리가 부쩍 늘었네. 얼굴에 주름 좀 봐.”


 누군가에게 이런 말 하는 사람의 심리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뭘 의도한 인사말인가. 그래서 노화를 막으라는 건가? 관리를 하라는 건가? 그런 의도라면 피부과에 갈 돈이라도 보태줄 건가? 그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기분이 좋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사람이라고밖에 생각안 든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인사가 있는데, 주로 살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새 살이 더 쪘네?”

“요요 온 거야?”


 뭔가 대단한 걱정이라도 해주는 척 말하지만 이것처럼 불필요한 말이 없다.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적이 있는 사람 중에 살이 찌고 싶어서 찌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본인이며, 평생을 두고 힘겹게 살과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도 본인이다. 더구나 본인은 살찐 것에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도 있다. 본인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데 다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스트레스를 준단 말인가.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체격이 큰 남자동료가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직장 상사 한 분이 지나가다 마주쳤는데, 손가락으로 그 동료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으이그 살 좀 빼라.”


 옆에서 본 내가 다 불쾌해서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기분 나쁘지?”


 동료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뭘.”


 그 동료는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당해서 이골이 난 듯했다. 그 동료가 성격이 워낙 무던한 사람인 데다, 남자 상사와 남자 부하직원 사이의 일이기도 해서 별 일 없이 그냥 넘어갔지만, 만약 그 동료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건 성별을 떠나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요즘은 자기 딴에는 칭찬이라고 하는 인사가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더 나아가 성희롱을 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뻐졌네.”


 이 말만 보면 그저 평범한 칭찬의 말이다. 듣는 사람은 다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이 많은 직장 상사가 어린 여직원을 볼 때마다 음흉한 눈빛으로 이 말을 반복한다면 여직원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하고 수치스러울 수 있다. 좋은 인사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칭찬이 될 수도 있고 성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사는 상대방을 향해 하는 것이지, 나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한 순간 지나치는 짧은 말 한마디라도 그 안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한다. 본인은 걱정해준다고, 칭찬이랍시고 던진 생각 없는 인사말 하나가 상대방의 정서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상대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자기 기분대로 정 떨어지는 인사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인간관계를 해롭게 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는 건 물론,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럼, 반대로 ‘호감 사는 인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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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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