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S.E.S.의 생수병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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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신화창조와의 유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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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997년 11월 28일>
10화.
찬란했던 나의 열일곱... 아무런 걱정이 없던 나의, 우리의 열일곱. 철이 없던, 참 행복했던...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재밌었던 우리의 열일곱. S.E.S.가 이어준 잊지 못 할 소중한 인연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립고 더 보고 싶은 얼굴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그때의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련한 추억들. 때로는 돈을 내서라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걸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꽉 막히기도 한다. 차라리 어렴풋한 기억들로 머릿속을 헤매고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그날의 기억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기 때문에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교통비만 들고 다녔을 정도로 모두가 궁핍한 덕질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그저 똑같은 팬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덕분이었다. 이 친구가 돈이 없으면 저 친구가 밥을 사주기도 했고 저 친구가 돈이 없으면 이 친구가 밥을 사주기도 했다. 웬만한 학교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었고 더 친한 존재들이었다. 심지어 학교 친구들은 잘 모르던 개인적인 사정들, 예를 들어 가정사에 대해서도 우리끼리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고 어딜 가나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2019년 가을, 핑클이 <캠핑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잠시나마 재결합을 했다. 1화였을까? 효리 누나부터 유리 누나, 진이 누나, 주현 누나가 팬들을 맞이하면서 서로 얼굴을 알아봤을 때 나 역시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군가는 주책이 없다고 하거나 누군가는 그저 한심한 학창 시절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나는 가슴 속 깊이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같은 덕질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특히나 누나들과 함께 활동을 하던 핑클이었으니까. 마지막화에 부르던 '남아있는 노래처럼'을 보고 들으며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행복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눈물이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모든 나날들이 아주 선명히 기억 나서 목이 막힐 정도였다.
'철이 없던 참 행복 했던 찬란히 빛나던 아득한 시절에 우리 함께 부른 노래가 내 가슴에 빛나네, 묻어둔 채 살아가다가 익숙한 멜로디 귓가에 들릴 때면 나도 몰래 멈춘 걸음이 또다시 날 그때 그 자리로...'
핑클의 유리 누나가 첫 소절을 부르는데...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사의 의미와 이야기는 단지 핑클의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어렸던 그때, 누나들과 라이벌이라는 것만으로 이유 없이 싫어했었는데... 그날의 내 모습이 또다시 기억난다. 누나들은 알까...? 당신들 덕분에 이렇게까지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을. 덕분에 20년이 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연은 끝이 아닌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그리고 군대를 가기 직전이었던 스물 하나까지 참 많은 것을 함께 했다. 그것이 만약 사랑이었다면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최소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뜨거운 사랑을 했다. 나처럼 <요정 베이커리>의 남자아이들은 하나둘씩 군대를 가게 되었지만 우리의 인연은 늘 지금처럼이었다. 그대를 한 번도 잊지 않았던 것처럼.
2001년 7월의 어느 날, 토요일로 기억한다. 어느새 1년 앞으로 다가온 2002 한일 월드컵에 앞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드디어 완공되었다. 2002 한일 월드컵 D-300 기념 및 상암 월드컵 경기장 완공 기념으로 S.E.S.가 그 운동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한데 6호선이 생겨나면서 월드컵 경기장 역 역시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생방송으로 기억을 하는데 정확히 그곳에는 우리 <요정 베이커리>에서 단 세 명만이 갔었다. 단 한 명의 임원도 없었고 다른 '파'도 전혀 없었다. 우리 <요정 베이커리>의 세 명이 전부였던 날이다. 기본적으로 스케줄 하나당 20명 정도는 몰려다녔던 우리였는데 그때 그 상암 스케줄에는 왜 세 명이 전부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같은 날 음캠(음악캠프)이 있어서 나머지 친구들은 MBC에 모여 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정확히 시샵이던 나와 '영원불멸', 또 한 명은 '적향루진' 누나였는지 '수영유괴범'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세 명이었다. 정말 토요일의 날씨라고 할 수 있듯 그날의 오후는 아주 맑았다. 월드컵 경기장 역을 처음 오게 되었던 날, 그렇게 호화스러운(?) 역은 녹사평 역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저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때의 월드컵 경기장 역은 정말 성을 연상케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 셋은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굉장히 신기해했다.
"우와"
"진짜 넓네?"
하지만 그렇게 넓은 지하철 역 치고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 월드컵 경기장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있어봤자 몇 개의 아파트만 있었을 뿐, 지금처럼 크게 활성화가 된 지역은 아니었다. 원래 상암 스케줄은 비공식 스케줄이었다. 완공 기념이었지만 일반인들이 아직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임원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고 다른 '파'에서도 아예 오지 않았던 게 그 이유다. 월드컵 경기장 안에서 누나들의 생방송 무대가 있기는 했지만 가나 마나였다. 임원도 없으니 당연히 들어가는 방법을 몰랐었으니까. 생전 처음 보는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입구를 찾는 것도 참 곤욕이었다. 잠실 주경기장이라면 종종 가봤던 곳이니 대충 어디쯤으로 가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지만 상암은 아예 처음이어서 모든 게 낯설었다. 누나들의 벤이 어디로 들어오는 지도 모를 만큼이나 낯선 곳이었고 주차장이 대체 어디 있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내 기억으로 이 생방송은 KBS1 채널로 송출된 것으로 아는데 웬만한 팬들도 모를 만큼의 희귀한(?) 스케줄이었다. 들어갈 수 있든, 들어갈 수 없든 무작정 갔던 것 같다. 아직은 철이 없던 열일곱이었고 무척이나 어렸던 우리들이었으니까. 그때 이미 우리는 뼛속까지 덕후였고 빠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방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당최 입구를 찾지 못했다. 처음엔 경기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입구처럼 보이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원들 조차 공지를 하지 않았던 비공식 스케줄이었는데 거의 사생팬에 가까운 덕질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셋의 가방에는 펄보라 색 단체복(우비)과 풍선, 개인 플랜카드, 그리고 심지어 '영원불멸'의 가방엔 대형 현수막 하나까지 들어 있었다. 거의 뭐 여행 온 수준이었다고 할까? 어쨌든 메인 입구로 보이는 곳 앞에서 서성거렸던 것 같은데 어떤 아저씨가 어떻게 왔냐고 우리에게 물었던 것 같다.
"어떻게 왔어요?"
"아, 저희는 S.E.S. 팬인데요..."
방송국 관계자는 아니었고 경기장 관계자로 기억을 한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아저씨가 우리에게 갑자기
"들어와요"
라고 하셨던 게 아닌가? 정말 방방 뛰었던 기억이 난다. 덕질의 기본 중 또 하나는 일단 두들겨 보아라. 들어갈 수 없는 공방이어도 이렇게 꿈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까. 그래서 덕질의 맛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 셋은 그렇게 아저씨의 안내와 배려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그 누구보다 더 먼저 입장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난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그때가 2001년 7월이었고 일반인들이 아직은 관중석에 앉을 수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 셋이 최초로 그 관중석에 앉게 된 영광을 누린 건 아니었을지 모른다. 안으로 들어가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삐까뻔쩍했고 모든 게 새것이었다. 저기 앞쪽에 간이 조명이라고 해야 하나? 무대를 설치하지는 않았고 카메라와 조명만이 세워져 있었다. 그쪽으로 가서 누나들이 노래를 부르게 될 바로 앞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누나들과 우리의 거리는 상당히 짧았다. 맨 앞줄에 앉았었으니까. 생방 시작 전, 그 넓은 상암 월드컵 경기장 안에는 우리 셋이 전부였다. 방송국 스텝들 빼고.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는데 우리에겐 너무나도 재밌었던 비공식 스케줄이었다. 누나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지만 그 카메라 바로 뒤에는 우리 셋이 응원을 하고 있으니 이건 뭐 3,4분 동안 아이컨텍을 주구장창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방을 열어 얼른 펄보라 색 단체복을 입었고 '영원불멸'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가방 안에 고이고이 접어서 가지고 온 대형 현수막을 펼쳐 관중석 난간에 걸었다. 당연히 그 대형 현수막에는 '요정 베이커리'라고 새겨져 있었으니 다시 한번 더 누나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누나들이 등장했다. '꿈을 모아서'를 부르는 동안 우리 셋은 목이 터져라 응원법을 외치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최성희! 미의여신 김유진! 사랑스런 유수영! 꿈을 모아 S.E.S.!"
(아직도 이 응원법을 기억하다니...) 그렇게 3,4분 정도 되는 무대가 끝이 났고 누나들은 잠시 생수를 마시며 티슈로 땀을 닦았다. 그리고 곧장 경기장을 빠져나갔는데 우리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으므로 누나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마 누나들도 그때 적지 않게 신기했을 것이다. 비공식 스케줄이었고 팬들도 들어올 수 없는 공연이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펄보라 색 단체복과 풍선을 든 세 명의 팬들이 앉아 있었으니. 정말 일당백이었다. 셋 뿐이었지만 대형 현수막까지 걸었던 스케줄이었고 한 사람당 두 개의 풍선을 흔들었다. 누나들이 먼저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그 뒤로 '스탠바이'(백댄서 팀이름으로서 당시 신화와 S.E.S.의 전문(?) 백댄서였다.) 백댄서 형들이 뒤따라 나가고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나였나? 나였는지 '영원불멸'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백댄서 형들에게
"형, 저기 있는 생수병 좀 주시면 안 돼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백댄서 형들 중 한 명이 바로 한걸음에 달려와 누나들이 마시고 두고 갔던 생수병을 집어 우리에게 손을 뻗어준 기억이 선명히 난다.
"감사합니다!"
근데 웃긴 건 분명히 생수병을 건네받은 기억까지는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그 뒷부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가방에 넣고서 다음에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만나면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당최 그 뒷부분만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다. 그런데 또 정확히 기억나는 건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 생수병에 입을 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했으면서도 그 와중에 지킬 건 지켰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누나들이 분당에서 공개방송이 있던 날로 기억한다. 정확히 분당이었는지 성남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왠지 분당이었던 것 같다. 사실 4.5집 '서프라이즈' 앨범은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같은 활동이었으나 4집 활동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온 앨범이라서 중간에 공백이 거의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꿈을 모아서'는 4집의 '감싸 안으며'와 'Be Natural' 활동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나의 활동도, 우리의 활동도 굉장히 바빴으니까. 스케줄이 정말 엄청났다. 누나들의 스케줄이 많으면 우리 <요정 베이커리>가 공방을 뛰는 횟수도 당연히 많아진다. 누나들이 힘든 만큼 우리들도 힘들었다. 어쨌든 분당 스케줄이 있던 어느 날, 결국 사고가 하나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