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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Mar 12. 2021

#8. 공식 팬클럽 사서함

8화 공식 팬클럽 사서함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8화


출처 : 구글

언젠가 KBS2 <뮤직 플러스> 녹화날이었나? 그때 베이비 복스가 '인형'으로 활동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리는 좀 멀었지만 나는 평소에도 베이비 복스의 간미연을 좋아했기 때문에 한껏 들떠 있었다. 이때부터는 아마도 누나들을 응원하기 위해 공방을 뛰었다기보다는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더 열심히 현장을 뛴 것 같다. (그래도 누나들을 응원하는 건 1순위였다.) 베이비 복스에서 윤은혜가 실물이 너무 예뻤다. 무대와 거리가 좀 있었지만 당시 베이비 복스의 5집 후속곡이었던 '인형'의 컨셉이 워낙 미치긴 했었으니까. 그중에 윤은혜의 코디가 정말 대박이었다. 유진 누나가 미연 누나와 워낙 친한 사이인 건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했기에 우리는 베이비 복스가 나올 때도 펄보라 색 풍선을 격렬히 흔들었다. 베이비 복스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 '베이비 엔젤스'였고 풍선 색깔은 분홍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히 핑클과 베이비 복스의 팬들은 남자 팬들이 80%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 S.E.S. 는 희한하게 남자팬 5, 여자 팬 5, 즉 5:5 비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반반이었다.


출처 : 구글 (핑클 팬클럽 ‘핑키’)

덕분에(?) S.E.S. 를 응원할 때 하나 안 좋은 게 있는데 남자 목소리와 여자 목소리의 비율이 5:5라서 "S.E.S.! S.E.S.!"를 외치면 잘 울려 퍼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핑클 팬들은 80% 이상이 남자 팬들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워낙 많이 오다 보니까 응원 소리가 장난 아니다. 베이비 복스의 팬클럽도 마찬가지. 우리 팬클럽과 핑클의 팬클럽보다 적은 팬들이긴 했지만 남자 팬들이 워낙 많아서 베이비 복스의 팬들 역시 거의 일당백 수준이었다고 할까?

출처 : 구글 (S.E.S. 팬클럽 ‘친구’)

그리고 신화와 활동이 처음으로 겹치게 된 시기였다. H.O.T. 는 원래 나의 우상이었고 신화도 좋아하긴 했는데 크게 좋아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SM에서 신화까지는 좋아했다.) 신화와 활동이 겹치면서 이들의 무대를 수도 없이 보게 되었는데 이게 내가 신화를 더 좋아하게끔 만든 계기가 되었다. H.O.T. 공식 팬클럽인 'Club H.O.T.' 유료 회원수가 4기 때 이미 4만 명을 돌파하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팬덤을 자랑했었는데 'Club H.O.T.'  5기 때는 유료 회원수가 무려 10만 명을 돌파해 그때 방송에서도 깜짝 놀란 기록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때 공식 팬클럽 유료 회원수 1만 명을 보유한 아이돌들이 없었는데 신화의 공식 팬클럽 '신화창조'가 1만 명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확실히 신화창조 4기 때 만 명을 돌파했는지 5기 때 돌파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신화창조의 유료 회원수가 만 명을 돌파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때 신화의 공식 사서함이었던 152-0070에 멤버들이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녹음한 기억이 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화입니다! 저희 신화창조 4기 (4기인지 5기인지 기억이 안 난다.) 회원수가 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화창조 여러분!"


이런 식의 메시지가 녹음되어 있었다. S.E.S. 팬인데 왜 신화의 사서함을 들었냐고 물으신다면? 듣는다고 해서 돈을 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전화비는 나가겠지만) 세기말, 새천년에는 각 가수들의 공식 사서함이 하나씩 있었다. H.O.T. 가 152-2357이었고 S.E.S. 가 152-5252, 신화가 152-0070,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핑클은 기억이 나지 않고 젝스키스의 사서함은 152-2580이었다. 수화기를 들어 152를 누른다. 그럼 수화기에서


"사서함 번호를 눌러주십시오."


라고 흘러나오는데 이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식 사서함 번호를 누르면 바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152를 누른 상태였으므로 이어서 5252를 누른다면 S.E.S. 공식 팬클럽 사서함으로 자동 연결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는 심심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식 사서함에 전화를 걸어 녹음된 메시지를 듣곤 했다. 대부분은 가수가 직접 녹음한다기보다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신화처럼 멤버들이 직접 녹음을 해주기도 한다.) 공식 팬클럽의 전국 회장이 녹음한다. 그때는 인터넷이 막 보급될 때였고 휴대폰과 삐삐가 아직은 공존하고 있던 때라서 가수들의 스케줄이나 컴백 소식, 콘서트 소식, 팬미팅 같은 중요한 소식은 전국 회장들이 사서함에 녹음을 해주곤 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신화의 '신화창조'가 사상 처음으로 유료 회원수 1만 명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것을 알고 있는 이유다. 그 뒤에 god의 'Fan god' 유료 회원수가 3만 5천 명 정도 됐었으니까


출처 : 구글 (H.O.T. 팬클럽 ‘Club H.O.T.)

 'Club H.O.T.'의 10만 명이 얼마나 대단한 숫자이고 얼마나 모으기가 힘든 숫자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에 비해 S.E.S. 공식 팬클럽 '친구'의 유료 회원수는 4천 명. 1,2기 때는 2천 명 정도 됐었고 3기 때 3천 명, 4기 때가 아마 4천 명 정도로 기억한다. 그리고 5기 때 조금 줄었었고 마지막 6기 때는 더 줄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갈수록 팬미팅 장소가 작아졌으니까) 핑클의 '핑키'도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보다 조금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왜 여자 아이돌 팬클럽 회원수는 몇천 명밖에 안되냐고 물으신다면? 간단하다. 여돌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남돌은 돈이 되는 게 예나 지금이나 아이돌계에 있어서 국룰이다. 왜 여자 아이돌은 돈이 되지 않느냐? 남자 아이돌의 팬은 99.9%가 전부 여자들이다. 반대로 여자 아이돌의 팬은 절반 이상이 남자들이다. 쉽게 생각하면 상업적으로 볼 때 아이돌 시장에 있어서는 남돌의 여자 팬들 지갑이 훨씬 더 쉽게 열린다. 공방을 뛰는, 즉 현장을 뛰는 팬들도 여자들이 훨씬 많은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밖에서는 다들 그런다.


"나는 S.E.S. 좋아"


"난 핑클!"


"난 베이비 복스!"


그때는 음반 시장이 나쁘지 않았을 때라서 음반 판매량은 준수했다. 30~40 만장씩은 팔렸으니까. 기본적으로 10만 장 이상씩은 팔렸을 거다. 반면 남자 아이돌의 음반 판매량은 다르다. H.O.T. 가 항상 100만 장을 돌파했거나 거기에 가까운 판매량을 가졌던 것처럼. 행여나 음반 판매량이 이전보다 저조할 지라도 남돌은 다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공식 팬클럽을 가입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굿즈를 만들어 팔면 꽤나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에 단독 콘서트로 벌어 들이는 수익은 이제껏 벌어왔던 수익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남돌의 여자 팬들은 굉장히 적극적이다. 굿즈를 살 때도 거의 모든 굿즈를 쓸어 담는가 하면 앨범은 기본 세 장씩. 새천년 기준으로 한 장은 내 거, 한 장은 보관용, 나머지 한 장은 선물용. 그래서 총 세 장을 구매하는 게 기본이었다. 여돌의 팬들은 대부분 남자들인데 밖에서는 누구를 좋아한다고, 누구의 팬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음반과 굿즈를 구매하기까지 연결이 되지 않는 게 팩트다. 음반은 친구 꺼 빌려서 들으면 되니까. 공식 팬클럽 가입은 더더욱 멀리한다. 여기에 콘서트를 가는 것?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여돌의 남자 팬들은 현장에 있어서, 덕질에 있어서는 방구석 덕후들이 많다는 것. (물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돌의 남자 팬들이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긴 했지만)


다시 뮤직 플러스로 돌아와서, 모든 녹화가 끝나고 공개홀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요정 베이커리>의 정예 멤버 중 하나였던 '영원불멸'이 나를 불러 세웠다.


"XX아!"


"왜?"


"저기 언니들 현수막 달라고 할까?"


'영원불멸'이 나를 불러 세웠던 이유는 현수막 때문이었다. 그때 누나들의 스페셜 무대가 있었는데 KBS 뮤직 플러스 측에서 S.E.S. 의 '꿈을 모아서' 사진으로 만든 대형 현수막을 이벤트용으로 만들었었다. (뭐 SM에서 만들어준 걸 수도 있지만) 대형이긴 했는데 세로가 굉장히 긴 현수막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엄청 기네? 저걸 드림 콘서트 때 3층에 걸면 볼만하겠는데?"


라고. 그래서 나는 나와 동갑이었던 '영원불멸'과 다른 정예 멤버들을 데리고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스텝들이 다들 무대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왠지 짬이 차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네?"


"저기 걸려있는 S.E.S. 대형 현수막 혹시 회수하세요?"


"아니요"


"그럼 어차피 버릴 거 저희 주시면 안 돼요?"


"그래요"


굉장히 쿨하셨다. 바로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 정도 크기의 현수막을 돈 주고 맞췄더라면 못해도 20만 원은 줘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려질 뻔했던 누나들의 대형 현수막 하나를 생각지도 못하게 득템 한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 <요정 베이커리>에서 맞춘 대형 현수막, 즉 앞으로 있을 드림 콘서트나 환경 콘서트, 팅 콘서트 같은 대형 콘서트에서 요긴하게 쓸 대형 현수막이 세 개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그날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른다. 현수막이 너무 커서 아예 KBS 별관 (뮤직 플러스는 별관에서 진행되었다.) 밖으로 나가 주차장이었나? 인도였나? 거기서 예쁘게 접어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한 큰 쇼핑백에 담아 집으로 가져갔다. 아마도 그 대형 현수막은 '영원불멸'이 챙겨간 것 같다. 본인의 집이 넓다는 이유였나? 둘 곳이 있다고 해 그렇게 하라고 했고 또 다른 임원이던 화정 누나였나? 상철이 형이었나? 무료로 얻게 된 누나들의 대형 현수막을 보며 한없이 좋아하던 우리들을 보면서 엄지를 날려주기도 했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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