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버티는 힘, 숨은 웃음 찾기 7
매일 출근하다보면 꼬박꼬박 출근길에서 만나는 얼굴들이 생긴다.
이런 경험, 매일 아침 회사를 나가본 사람이라면 다 있을 터.
분명히 모르는 사람인데, 매일 얼굴을 보다보면 익숙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하루이틀 안 보이면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나의 이웃들.
버스 타러 나가면 큰길 가에 엄숙한 표정으로 줄 지어 서 있는 남자들이 있다.
옷 색깔도 다 어두운 그들은 무슨 버스를 기다리나 하고 어느 날 유심히 봤더니,
평택의 LG 디지털 파크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버스 앞 목적지 이름이 디지털 파크라고 되어 있어서 처음엔 뭐야 에버랜드 같은 건가 했는데
그런 데로 간다고 보기엔 사람들 얼굴이 너무 슬퍼서 ㅎㅎㅎ 일터의 이름이란 걸 알았다.
검색을 해보고 아 평택에 있는 LG 회사 단지 별칭이란 걸 알았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 진입하면 그들의 버스가 온다.
그들이 정말 가기 싫다는 표정을 하고 버스에 오르고나면 곧이어 내가 탈 버스가 온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그들이 없다? 그러면 난 늦은 것이다.
LG의 버스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요일이나 금요일이나 정확한 시간에 온다.
사람의 본능까지 다스리는 자본주의의 힘이란!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몇 있다.
두어 달 전부터 한 젊은이가 계속 같은 시간에 타기 시작해서, 재수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첫 날만 지하철을 타고 다른 날은 다 버스를 타길래, 적어도 대치동에 가는 건 아닌가보다 했다.
그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는 쪽을 택한 듯했다. 재수생이라면 이번은 꼭 성공하렴!
내가 일 주일 간 휴가를 썼다가 다시 정류장에 등장하자 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어디 갔나 궁금해 해줬다니 고마웠다.
우리는 이 정도의 거리가 허락된 동 시간을 사는 이웃이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눈에 들어오는 커플이 있다. 몇 달 간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남녀가 하도 단정하고 고와서 너무 잘 어울린다.
손을 꼭 잡고 지하철에 오르는데, 자리가 비면 여자가 앉고 남자는 그 앞에 서서 다른 자리가 나도 앉지 않는다.
갓 결혼한 부부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일 주일 간 한 번도 만나지 않아서 약간 걱정된다.
그저 그들의 출근 시간이 바뀐 것이길.
청량리역에 내리면 유쾌한 동료지간인 남녀를 가끔 만난다.
그들은 한 칸에 탈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꼭 중간에서 조우하여 "좋은 아침!"을 서로 외친다.
여자가 "어제 늦게까지 달렸어?"하고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물으면,
남자가 "어휴 말도 마. 부장님 끝까지 가시려고 해서, 겨우 모셔다 드리고, 하하하"하고 대담을 한다.
오늘 힘들겠다, 잘 버텨보자! 이런 말을 나누면서 일터로 향하는 젊은 그들의 대화를 듣는 날은,
늘 어김없이 미소를 짓는다. 왜 세상의 부장님들은 다 똑같은 건데! 왜 집에들 안 가시나요?!
청량리역에서 바이크를 타고 왼쪽 길로 가면 아무도 안 만나는데,
신호가 가끔 다르게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엄마와 어린 아들을 만난다.
그들도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간다.
아들은 씽씽이를 타고 엄마가 아들의 가방을 들고 길에 서 있는데, 학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모자가 늘 깔깔거리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우리 아들 어릴 때가 생각나서 미소를 짓는다.
엄마가 하나도 안 꾸미고 나왔지만 아들과 함께 환하게 웃을 때 너무 예뻐 보인다.
아들은 시종일관 엄마에게 수다를 떠는 명랑한 아이다. 엄마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는 행복한 아이이다.
자전거를 타고 잠깐 지나는데도, 어쩌면 행복으로 빛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그래도 일상의 아주 작은 조각을 나누는 이웃들이다.
서로의 일상을 지켜봐주며 아주 작은 의미를 기억해주는 이웃들이다.
그들은 나를 알고 있을까? 아마 알더라도 지친 기색으로 출근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기억하겠지 :)
그 아줌마가 매일 회사에 가서 점심마다 브런치를 쓰고 있다고는 아마 절대 상상 못할 거야.
삶은 역시 반전의 연속인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