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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12. 2019

#8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신조차도





세 번째 만남과 네 번째 만남 사이에는 한 달이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당신은 내 옆에 없었다.

그 한 달 동안 당신에 대한 복잡한 감정만이 있었다.               




Brassaï, Chequerwork of Shadow, Paris de Nuit (Brassaï & Paul Morand이 펴낸 사진집)



분명한 것은 그 한 달은 당신과 나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은 명료했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앞은 깜깜했다. 빛 한점 없었다. 브라사이Brassaï의 사진 속 밤거리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나는 깜깜한 길을 걸었다.

내가 그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분명히 당신이 있었다.

당신과 나는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끝조차 스치지 않았다. 그 어떤 대화도 없었다.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말들이 맴돌았다. 그러나 나는 단 한마디조차 낼 수 없었다. 어쩌면 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라도 당신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당신과 나는 그저 나란히 걷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과 나는 동행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같은 방향을 걷고 있는,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 였다.

내 옆에 나와 함께 걷고 있는 당신은, 보이지를 않았다.

 


Brassaï, Paris de Nuit (Brassaï & Paul Morand이 펴낸 사진집) 중 30번




눈을 뜰 수 없었다. 당신이 피운 지독한 담배 때문이었다.

당신은 그토록 독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다.

눈앞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당신은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 연기 속에는, 당신과 함께 걷는 나만 있지 않았다.

나는 그때 보지 못했다. 당신의 한편에는 당신의 과거가 있었음을.

그 과거에는 당신이 한때 사랑했으며 지금은 증오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렇게 당신의 과거는 여전히 현재였다.           



당신의 그 모든 첫 순간을 함께했을 그녀가 부러웠다.

첫 순간은 걱정만큼이나 설레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삶에서,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에서의 첫 순간은 더 없이 설렌다. 내 옆의 당신은 설렌 적이 있었을까.

질투심은 결국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당신이 그 어둠 속에서, 내 손을 한 번만 잡아줬었더라면, 당신이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줬더라면,

나는 그렇게까지 비참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Carlton Alfred Smith, Recalling the Past, 1888. Watercolour, Victoria and Albert Museum





그때 내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어느 것도 명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미했다.

당신과 나의 관계도 그랬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관계. 그것이 당신과 나 사이의 답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답은 언제나 단순하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답은 더없이 명료하다.     

그런데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어려웠으며 복잡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신과 나는 네 번째 만날 예정이었다.

당신과 나는 이제 뜨거워져야했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그저 복잡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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