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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13. 2019

#10 오해였다, 당신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당신과 내가 네 번째로 만난 그 밤, 나는 당신이 어두워 보인 이유를 몰랐었다.

내가 그 이유를, 당신의 빈 공간을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서였다.

     

그래서 그때 나는 혼자 적당히 생각해버렸다.

일이 힘들어 많이 피곤해서 당신의 얼굴이 어두운 거라고.  

당신과 내가 한 달 만에 만나서, 낯가림이 심한 당신이 어색해할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당신의 그늘 진 얼굴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밝게 웃었다.     



당신 앞의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나는 웃었다.

당신은 내가 웃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당신은 내게 원래 잘 웃는 것 같다며 웃음이 많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원래 늘 웃지 않았다.

당신 앞의 나였기에 나는 늘 그렇게 웃었다.

당신은 나를 그렇게 저절로 웃게 하는 사람이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과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계속 웃게 된다고.

친구는 그런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Edward Hopper, Soir Bleu, 1914.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그때 나는 내 앞의 당신이 나를 보며 웃었으면 했다.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처럼, 분장을 한 사람을 보며 웃었을 그 사람들처럼.

비록 나는, 그림처럼 분장을 한채 속으로는 울고 있을지라도.



다행이었다. 어느 샌가부터 당신도 나도 웃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있던 그 한 달이 조금은 채워졌다고 믿어버렸다.

기대도 했다, 당신과 나의 시간이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흘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은 자만이었고 착각이었다. 그리고 그 착각은 계속되었다.      



그때, 내 앞의 당신에게서는 그 어느 때보다 독한 담배 냄새가 났었다.

나는 그 담배 냄새를 내 탓으로 착각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못 만난 한 달 동안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나로 인해 고민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당신의 시간이 내게로 흘러오고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나의 시간이 당신에게로 흘렀던 것처럼.

아니었다. 대단한 오해일 뿐이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당신이 담배를 피운 이유는, 당신과 내 사이에 있던 그 틈, 당신의 복잡한 과거 때문이었다.

아마도 당신의 과거는, 그 비가 내리던 그 시기 즈음에, 당신을 떠났던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은, 매년 그 시기에 그렇게 담배를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당신은, 나를 보지 못한 한 달 동안, 그래서 아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그 시기 즈음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신의 과거는 여전히 현재였다는 것이다.     

당신의 과거는, 달리Salvador Dalí의 그림 속 시간과 달랐다.

당신의 과거는 녹지도 않았다. 힘없이 휘어지지도 않았다.




Salvador Dalí,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The Museum of Modern Art




그 한 달 동안 당신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나의 그 한 달은 당신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한 달은 흐르지 않았다.

당신의 한 달은 온통 지독한 과거였다.

당신은 그 어느 순간에 멈추어 있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당신 앞에서 그토록 웃었던 나는, 당신의 현재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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