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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18. 2019

#15 당신과 나의 시간은 닮은 듯 달랐다



내가 당신의 빈 공간을 묻기에 모든 것이 적당한 날이었다. 이제 막 봄이 오는 듯했다. 이제 막 어둠이 내렸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차를 마시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적당한 날, 나는 당신과 다섯 번째로 만났다.          

그러나, 당신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 했던 내 선택은 적당하지 않았다.

내게, 그 빈 공간을, 과거를 이야기하는 당신을 보며 알았다.



나는, 드디어, 당신에게,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빈 공간을 물었다.     



Edvard Munch, Separation, 1896, Munch Museum, Oslo


당신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와 함께한 지난 시간을. 

당신은, 끝까지 그녀와의 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았다.

당신은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당신의 눈은, 당신의 말투는, 너무 담담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애정의 반대가 증오나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정의 반대는 증오나 미움과 같은 감정이 아닌 것 같다.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이 사라진, 상대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아마도 애정의 반대는 무관심에 가까운 것 같다. 


나는 그렇다. 내게 지나간 과거는 그저 지나간 과거이다. 어쩌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빨리 잊기로 노력한 덕분인 듯 하다.

다만 그때의 나를 마주 보는 것은 힘들다.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 과거의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거가 나를 지나쳐가서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안다. 그 시간들이 지나갔음에, 그리고 그 시간들을 잘 견딘 스스로에게 그저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내게 그 과거가 과거이듯이, 그 과거에게도 내가 그저 과거이길 바란다. 내게 과거는 그렇다.          



Edward Hopper, Office in a Small City, 1953, Metropolitan Museum of Art


당신은 아니었다. 당신은 내 앞에 있었지만 당신의 모든 것은 과거를 향했다.

당신이 끝까지 노력했음에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시선은 과거를 향했다. 

호퍼 Edward Hopper의 그림 속 남자의 시선이, 창 바로 앞의 무언가를 향하지 않고, 그 너머의 어딘가를 향해있듯이.

당신의 시선은 바로 앞에 있지 않았다.

당신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당신은, 그 말은 하는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몰랐겠지만 말이다.



인생에서, 끝까지 노력하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다시 쉽게 올까?


당신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그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는지도, 어쩌면 그런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당신이 그토록 모르는 척하며 부정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과거에 있었다.

내 앞에서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투로, 그런 눈빛으로,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는 당신이 참 너무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의 그녀가 궁금했다. 도대체 당신을 이렇게 과거에 머무르게 한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속을 내보이지 않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그녀는 행복했을 것 같았다.  

       


         

Edvard Munch, Two People (The Lonely Ones), 1899, MoMA


그때 알았다. 당신과 나는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달랐다. 

나의 시간은 늘 흐르고 있다. 

당신의 시간은 어제보다 먼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당신과 나의 시간은, 그저 잠깐 스쳐 있었던 것뿐이었다. 

당신과 나, 둘 중 하나가, 혹은 둘 다, 잠시 시간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당신과 나는, 뭉크Edvard Munch 의 그림 속 두 사람처럼, 같은 공간을 두고 다른 시간에 있었다.



당신과 나는 그토록 미묘한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순간은, 당신과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왜 당신과 내가 이 순간에 함께 있게 된 것일까, 와 같은 생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신이 느낀 그 공기도 내가 느낀 공기와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나와의 여섯 번째 만남을 약속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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