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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1. 2019

#17 헤어질, 인연에 대한 예의

인간관계에서 우유부단함과 신중함은 다르다




당신과 나는 한 달 만에 만났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만남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나 사이의 공기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당신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도 분명히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 결정은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신과 내가, 여섯 번째로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당신과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를 보다 명확하게 해야 하는 시기였다.

당신과 나는, 어린 나이에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당신과 나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에서 만났다. 양가에서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나도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만난 그 몇 개월 동안 양가에서는 당신과 내가 마치 결혼할 듯한 분위기였다.          



인간관계에 있어 우유부단함과 신중함은 다르다.     


지난 몇 개월간 나는 당신을 보며, 우유부단함과 신중함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우유부단함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고 그 생각들이 지나치게 깊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끊임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신중함은 생각이 적당하게 많으며 그 생각은 깊이가 있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매우 적절한 시점에 딱 맞게 결정을 내린다.     


비유를 하면 이런 것 같다.

우유부단함은, 상대방의 컵에 물을 얼마나 채워주는 게 맞는지 혹은 비워두는 게 맞는지를, 계속 고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컵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비워져 있게만 된다.

신중함은, 상대방의 컵에 물을 얼마나 채워주는 게 맞는지 혹은 비워두는 게 맞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컵에는 물이 적당히 채워지거나 비워져 있게 된다.           



Edvard Munch, Attraction II (Tiltrekning II), 1895, MoMA




우유부단함과 신중함의 차이는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

계속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면 결국 양쪽 다 상처를 받고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

어차피 그 관계의 답은,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 이 둘 중 하나로 정해져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에, 그 관계와 관련된 사람들은 조금씩은 상처를 받게 된다. 빨리 결정을 내리든, 늦게 결정을 내리든, 결국 모두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대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적어도 그 순간에는, 빨리 결정을 내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상대는 헛된 기대만을 하게 된다. 결정이 늦어지는 만큼, 상대의 감정만 소모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상대의 인생만을 낭비하게 된다.

그 상대는, 당신에게는 고민하게 하는 상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상대일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그 상대가 빨리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놓아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유부단한 태도로 결정을 늦추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다. 본인의 미련 때문이다. 고민하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가 상처 받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상처 받게 될까, 듣기 싫은 소리를 듣게 될까, 두려운 것일 뿐이다.


우유부단한 태도는 배려가 아니다. 그저 비겁하고 이기적인 자세일 뿐이다.


          

지난 몇 개월간 내가 만난 당신은, 스스로는, 본인이 생각이 많고 그 생각들이 깊어 신중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지난 몇 개월간 당신은 지나치게 우유부단했다.

당신은 우유부단함 마저 적당하지 않았다. 우유부단함 마저 지나쳤다.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배려한 적이 없었다.

나는, 불안하고 애매한 감정으로 나를 계속해서 만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닌 것 같은 인연인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Edvard Munch, Separation II, 1896, The National Museum, Oslo



          

내가 말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누군가는 이미 한참 전부터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한 네가 먼저 놓으면 되잖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 때문에 헛되게 보낸 내 시간들이, 내 삶이 아까웠다. 그래서 이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당신도 적어도 나만큼, 가능하면 나보다 더, 힘들기를 바라였다. 한편으로는 당신이 내가 지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당신이 나보다 먼저 지쳤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미 12년을 함께한 당신에게 돌아가기로 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당신이 내가 말하기 전에,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해주기를 원했다. 내 부모님은 그 12년의 당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당신이 나와의 관계를 정리해준다면, 그것은, 내가 그 12년의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매우 딱 맞는 명분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지친 내가 먼저 당신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당신과 일곱 번째 만남을 약속했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또다시 당신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당신은 그 순간을 피했던 것 같다.

결국 전화로, 내가 먼저 당신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일곱 번째 만남에서 당신에게 마지막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나는, 적어도 얼굴을 마주 보고 당신에게 헤어짐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나는, 인연을 잘 맺는 것만큼이나, 인연을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게 헤어질, 인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Jean Béraud, La Conversation(좌),  The Private Conversation(우, 1904),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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