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테오 Jun 22. 2019

#19 눈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눈은 언제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



그 사람의 눈 속에 나는 없었다.     


서른 즈음, 나는 결혼하려던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만났다. 그렇게 꽤 오랜 인연을 정리했다. 그때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남은 감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헤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그 사람과 나, 둘 다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 그런 확신을 준 것은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이었다. 그 사람의 눈에서 나를 향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사람 역시 내 눈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남은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아팠다. 그래도 그렇게 직접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서로의 눈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나는 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게 된 이후로 이 사람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사람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부터 동료나 선후배들이 내게, 어떤 동료와 무슨 사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답을 했다. 실제로 그 당시에 그 동료와 나는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 그 동료와 나는 원래 소속된 팀은 달랐으나 잠시 같이 일을 하게 된 사이일 뿐이었다.     


이 사람의 행동들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만할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원래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배려심도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행동들을 동료로서의 친절이나 배려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사내연애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더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점점 이 사람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 사람과 일을 함께할 때면, 모든 것이 너무 즐거웠다. 힘든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듯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럴 만했다. 누가 보아도, 정말 좋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William Powell Frith, Lovers, Art Institute of Chicago(좌), Private Collection(우)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사람의 눈빛에 의지했다.      


이 사람은 내게, 내가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며, 함께 일하며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본인이 나보다 연상이지만 늘 내가 더 어른스러운 느낌이라며 그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아직 이전의 시간에 대해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저 이 사람을 지켜보았을 뿐,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받게 될 상처도 두려웠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도 나를 재촉하지 않은 채 그저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이 사람과 나는 그렇게, 동료보다는 가깝지만 연인은 아닌 사이로 지냈다.      


이 사람은 늘 나를 알아봤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이렇게 나를 알아봐 준다는 사실이, 내게는 어느샌가부터,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알아보는 이 사람에게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때, 친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이 사람을 만나라고. 이 사람의 눈은 늘 나를 향해 있다고. 이 사람의 따뜻한 눈빛은 늘 나를 향해 있다고.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나는, 일이 힘들 때라도, 정말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그러니 이 사람을 놓치지 말라고.          




눈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눈은 언제나 마음을 따른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모를 수 없었다. 이 사람의 눈은 내게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따뜻한 말을 했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면 그 사람의 눈을 보라고 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그때 알 수 있었다.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의 그림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상대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끝내 이 사람과 연인 사이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도 내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미안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지는 남녀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이 너무 좋아지는 것도 두려웠다. 사내연애라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일은, 내게, 지금껏 가장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은 늘 어떤 기준이 되었다. 일시적 당신을 만나면서도 내가 확신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그 눈 때문이었다. 일시적 당신의 눈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당신의 눈은 늘 과거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당신의 그 눈은 내가 지난 몇 개월간의 만남을 정리하는 계기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눈은 마음을 따른다는 것을 몰랐을 것 같다. 내게 그토록 따뜻한 눈빛을 보내준, 그리고 어디서든 나를 알아봐 준, 그런 당신에게 늘 감사하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늘 행복할 수 있기를.    



Charles Edward Perugini, The Lovers in a Garden, Private Collection


 



매거진의 이전글 #18 사람 혹은 관계에 대한 확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