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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4. 2019

#20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쓰는 모순된 이유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가장 힘든 일은 그 사람과 관련된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지난 순간들이 생각만큼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억이 흐려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감당하는 일이 힘들고 아프다.    


 

누군가를 잊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인연을 정리하는 순간, 그 사람과 관련된 것들을 다 버렸다. 그럼에도, 머리로는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못했다. 그 시간을 잊기 위해서는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잊기가 힘들 때는, 나와 헤어진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던 내게 친구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친구는 내게, 죽으면 다시 볼 수 없으니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잊으라고 했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죽어서 다시 볼 수 없는 것조차 슬퍼서 울었던 날들도 있었다. 


          

당신을 죽은 사람으로 할 수 없었다.     


지난 몇 개월간 만난 당신은 죽은 사람으로 하지 않았다. 당신과의 시간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그럴 수 없었다. 당신에 대한 마음이 특별했던 탓이 아니었다.       


당신을 만나기 거의 바로 전,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게 되는 자연스러운 죽음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하기도 했다.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게 공기였다. 나는 늘 그녀와 함께였다. 카삿Mary Cassatt의 그럼처럼, 그녀는 늘 그렇게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줬다. 그녀는 부모님이 아니었지만 더 부모님 같았다. 나는 그녀가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게 그녀는, 내 삶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내 삶도 내어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는 믿어지지 않는다. 




Mary Cassatt, Mother Feeding Child, 189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떠난 사람에 대한 예의에도 예외가 있다.     


그녀를 잃으면서 내게 죽음의 의미는 달라졌다. 죽음을 준비해왔음에도 괜찮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부재는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내게 그녀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떠난 사람은 보내주는 게 예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질 것도 안다. 실제로 내가 그녀의 부재를 믿기 어려운 것과 별개로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흐릿해진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시간이 가는 게 무서워진다.     


그래서 나는 욕심인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관련된 기억이면 어느 것 하나라도 간직하고 싶다. 그녀에 관한 기억이라면,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도 남겨두고 싶다. 그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할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어느 것 하나 지우고 싶지 않다.          



당신을 잊으면 그녀와의 기억들까지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을 만났다. 이상하게도 당신은 그녀와 닮은 데가 있었다. 특이한 사람인 것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헛된 약속을 하지 않는 것도, 그런 것들 모두 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나를 매우 아꼈다는 것과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녀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무엇보다도, 내가 당신과 함께 보낸 시간 어딘가에, 내가 그녀를 생각하던 시간도, 그녀의 흔적들을 찾아가던 그런 시간도 있다. 그래서 당신과의 기억을 지우면, 내가 그녀와 함께한 기억들까지 잊게 될까 무섭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 수 없었다.           




Vilhelm Hammershøi, Interior, Strandgade 30, 1908, Aarhus Kunstmuseum


잊기 위해서, 그리고 잊고 싶지 않아서.     


10여 년이 넘게, 나는 늘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하다. 노력 덕분인지, 나이 덕분인지, 나는 쉽게 잊고 만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그 날부터, 나는 그 어떤 기억이라도, 지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녀와 관련된 기억만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기억을 지우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글을 썼던 이유인 것 같다. 

하나는 조금은 잊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래오래 잊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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