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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4. 2019

#21 결혼은, 고구려인처럼, 사랑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하다.





Pascal Dagnan-Bouveret, Blessing of the Young Couple Before Marriage, 1880-81, Pushkin Museum



나는, 대학을 가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대학을 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여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가 적합한 변명이겠다. 그러나 대학 입시가 생각만큼은 쉽지 않았다. 성적이 꼭 노력에 비례하지만은 않았다. 다행히도, 대학에는 무사히 갔다. 그리고 방황을 하긴 했으나, 또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일을 가까스로 찾았다.     

나는, 결혼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 결혼을 한다를 기본으로 여겼다. 이유는 모르겠다.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나는 결혼을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결혼을 대학과 같이 여겼다. 나는, 적당히 나이가 들었을 때, 내 곁에 있는 적당한 사람과,  부브레 Pascal Dagnan-Bouveret의 그림처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게 결혼은, 마치 남들이 다 대학에 가니까 가는 그런 것과 같았다. 

그런데 남들 간다고 해서 모두가 대학을 갈 필요는 없었다. 결혼도 그렇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모두가 결혼을 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대학도, 결혼도, 남들은 너무나 쉽게 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에는, 원하는 대학을 혹은 목표로 하는 대학을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결혼도 그랬다. 흔히 말하는 결혼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어 결혼할 사람을 찾으려고 생각했을 때, 결혼하려고 했을 때, 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오만했다.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나는, 친구에게 결혼할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내게 친구가 물었다.

“평생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인데 그 정도 힘든 게 당연하지 않아?”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결혼을 너무 쉽게, 가볍게, 생각했다.


나는 선을 보든, 소개팅을 하든, 늘 결혼하기에 적당한 사람을 찾았다.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맞는 내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은 안다고 하지도 못하겠다.

다행히도, 그렇게 나와 맞는 내 사람이, 내게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내 사람은 내게 적당한 사람이 아니다. 내게 특별한 단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당연히 쉬울 리가 없다.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며칠 전에 우연히 설민석 선생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 강의 영상인데 고구려인의 결혼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강의를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링크 https://m.tv.naver.com/v/3785457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IU010wGBjw8


“고구려는 연애결혼이 발전된 사회였다. 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여자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여자가 원래 살던 집 옆에 집을 짓고 산다. 이 집이 바로 서옥이다. 그래서 고구려인의 결혼제도를 서옥제라고 한다. 일종의 데릴사위제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아이를 낳게 되면, 남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때 여자의 집에서는 적당한 양의 음식을 보낸다. 이 정도만 보내는 이유는 더 많이 보내면 여자를 팔아먹는 것 같아서이다.”     

     

이 제도를 설명하다가, 선생님이, “결혼은 고구려인처럼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아직은 학생들이 어리기는 하다고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결혼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이, 집, 텔레비전, 다이아몬드 반지와 같은 것들 때문에 헤어진다. 어떻게 그깟 콘크리트 구조물과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사랑이 못할 수 있는가. 물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고구려인처럼.”     



이 영상을 보면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 때문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끄럽게도, 나의 말과 실제 내 행동은,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나는 늘 결혼을 재촉하는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또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했다. 나는 이미 마흔에 가까운데, 결혼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는 나이일 수 있는데, 여기서 조금 더 늦으면 어떻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정작 내 행동은 달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난 인연들과 헤어진 이유들 중의 하나도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대에게 확신을 요구할 수 있었겠는가.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책임질 능력은 필요하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을 열고 나간다는 그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 친구가 내게 결혼은 현실이라며 본인의 소감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친구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와 신혼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결혼이 현실임을 알았다고 했다. 아마도 결혼은 아래 그림 두 점, 신혼여행과 말다툼, 어느 사이인가에 있는 것 같다.



좌측 : Edward Frederick Brewtnall, Where Next(The Honeymoon), c. 1890s, Private Collection

우측 : Belmiro de Almeida, The Spat(포르투칼어 Arrufos), 1887, Museu Nacional de Belas Artes




사랑이 결혼의 가장 큰 전제인 것은 맞다. 그런데,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을 지킬 만큼의 능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을 지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민석 선생님이, 사랑이 콘크리트 구조물보다,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못하냐며 물었을 때, 아직 어린 학생들은 웃었다. 궁금해진다. 그렇게 웃었던 그 학생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결혼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지.      


또, 궁금해진다. 설민석 선생님의 저 강의를 듣거나 보게 된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혼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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