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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7. 2019

#24 연락 문제로 지킬 앤 하이드가 되었다!

연락의 빈도가 애정의 척도는 아니지만 연인 간에 예의라는 게 있다.



영상 캡처 https://entertain.daum.net/tv/1444198/video/399770763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해버렸다. 이틀간 연락이 없는 여자에게 남자가 토라진 마음을 말하는 장면이었다. 아래가 그중 일부이다.

(영상 링크 https://entertain.daum.net/tv/1444198/video/399770763)


이틀 동안 내 문자 씹었죠? 그것도 읽씹.

아니 원래 의미 있는 사람한테 연락을 전혀 안 하나?

의미 없을 때도 안 했잖아.

그럼 의미가 있거나 없거나 연락 안 하는 건 똑같네요?

그럼 뭐하러 의미 생겼다 그래서 내가 기대를 하게 만들어요?


예전엔 지나쳤을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공감이 갔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특이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지킬 앤 하이드였다.     



           

나는 불성실하며 불안하게 하는 연인이었다.     


 

지난 몇 개월 간 만난 특이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는 연락 문제로 불안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연락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락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늘 상대를 불안하게 했다.

늘 문제가 된 것은 내 연락 패턴이었다.

나는 먼저 연락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답도 제때 하지 못했다.     


마음이 없어서거나 일부러는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는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내 기준에서 적정한 연락은 출근길과 퇴근길에 하는, 하루 두 번 정도의 연락이었다. 그나마 출근길이나 퇴근길은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연락 패턴은 일종의 내 성향이기도 했다. 반대로 전 연인들의 연락 패턴도 그들의 성향이었다. 다행히도 그럴 때마다 내가 제때 답을 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런 연락을 받는 것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연락을 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나는, 너무나 불성실한 연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멀쩡한 사람이 연락에 집착하게 되었다.   


올해 만난 특이한 사람은 처음부터 연락 자체가 잘 안 되었다. 두 번째로 만나기로 한 날도 연락이 너무 늦어서 만나지 말까 고민하게 할 정도였다. 연락이 먼저 오는 경우는 대부분 본인이 필요할 때였다. 약속 시간에 늦는다거나 약속 일정을 변경한다거나 하는 그런 연락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연락을 잘하지 않는 나 조차도 말 그대로 지쳐버릴 정도였다.      




Charles West Cope, Hope Deferred, and Hopes and Fears that Kindle Hope, before 1877, Private Collection

James Carroll Beckwith, The Letter, 1910, Private Collection



연락의 척도가 애정의 빈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복잡한 감정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 문제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이 부분에 있어서 감을 잡지 못했다. 다들 연락이 없는 편인 것은 인정했다. 그런데 연락을 할 때는 다정다감하게 한다는 것이 친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연락 없는 남친’, ‘남친 연락 문제’ 등등으로 검색까지 했다.

그런데 내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랐다. 일반적으로 연락 없는 남친으로 고민하는 경우는 처음과 달리 연락이 자주 없는 경우였다.

내가 만나던 사람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거의 연락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나는 연락에 집착하기 시작했으며 연락 부분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이 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특히 그 사람에게는, 그런 연락에 연연하지 않는 척을 했다. 그런데 속으로는 온갖 욕을 다했다. 친구들한테 특히 온갖 욕을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친구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그렇게 나는 연락 문제 때문에 지킬 앤 하이드가 되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자화상처럼 지난 몇 개월 간 나는 다중인격이었다.

이 특이한 사람을 만나서 이전의 내 연락 패턴을 반성하기까지 했다.

연락 문제를 두고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던 것도 내 실수였던 것 같다.

나는 인간은 본인이 아픔을 겪어봐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있다는 깨달음까지 얻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Self-Portrait, 1976, Gagosian Gallery


      


연인 사이에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연락 문제에 대해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연인 사이에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문자를 받았으면 답장을 해주는 것,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해주는 것,

무슨 일이 있으면 있다고 말해주는 것,

있다가 전화한다고 했으면 정말 있다가 전화해주는 것,

멀리 간다면 간다고 말해주는 것.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략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의도적이지 않은 이러한 무시 때문에 기다리는 입장에 놓여있는 사람은 괜히 집착하는 사람처럼 생각되고

조금씩 무너져 버리는 자존심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만다.

혼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다면, 차라리 그냥 혼자 지내라.

괜히 사람 집착 중독자로 만들지 말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 사랑을 바라는가?


기다리는 당신은 잘못이 없다.

당연한 예의를 기대하는 것뿐이니까.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중에  

       



연락의 빈도가 애정의 척도인 것은 아니다.

매번 제때 연락을 못 하더라도 연락에 대해 신경을 썼으면 한다.

연락 제때 안 해서 다른 사람이 기다리면서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말자.

연락 제때 안 해서 멀쩡한 사람이 집착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되게 하지 말자.

의미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주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것을 못 할 거면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게 좋겠다.


만약 연락 문제로 고민되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달라지지도 않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괜히 마음까지 다쳐가면서 지킬 앤 하이드가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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