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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6. 2019

#23 “사랑? 그게 뭐야? 난 잘 모르겠는데?”

고구려인처럼 사랑해야 되는데,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사랑? 그게 뭐야? 난, 잘, 모르겠는데...?”     


드라마 대사 같은 ‘사랑이 뭐야? 난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라는 말은, 20대 중반 즈음, 한 친구에게,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당시, 친구들과 나는, 결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본인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다들 충격을 받았다. 그럴 만했다.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한 이 친구는, 바로 그전까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불같은 연애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연애가 끝난 후, 친구는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남겼다. 그것도 심지어 웃으면서...! 한동안 우리는, 이 친구가 그 연애 때문에 충격이 너무 컸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사랑해?”

“사랑? 잘 모르겠는데... 근데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가 없어, 그리고... 이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면, 나, 너무 화날 것 같아!!!”     


더 놀랍게도, 몇 년이 지나서 서른 즈음이 되자, 다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답이 조금 달라졌다. 

서른 즈음에 들어서자, 내 친구들 중 일부는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을 했다.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한 친구도 결혼을 했다. 그때마다, 나를 포함한,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결혼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답이 한결같이 비슷했다. 다들, ‘사랑이 뭔지 모르겠는데, 결혼할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다.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우리 중 누구도 사랑이 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이 친구들 중 반 정도가 결혼을 했다. 조금 더 일찍 결혼한 누군가는 학부모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나와 같은 미혼이다. 

     

“사랑이 뭐야? 나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

“사랑?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사는 거지, 근데... 굳이 말하면 편안한 거...?”

이번에는 내가 친구들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내 질문을 헛소리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나름대로 진지하게 답을 해주었다. 웃으면서. 그리고 답은 또 대체로 비슷했다.      


나 “사랑이 뭐야? 나 솔직히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친구 “야!!!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사는 거지 뭐... 근데 굳이 말하면 편안한 거...? 근데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 “음... 설레는 거? 떨리는 거? 아, 드라마에서 그랬는데... 뜨거운 거라는데?”

(다들 웃었다)

친구 “야!!! 그건 드라마고!! 그렇게 맨날 설레면 심장병 걸려서 죽어, 그리고 그 뜨거운 거 얼마 못 가!” 

친구 “웃기다, 얘 뭐라는지 좀, 더, 들어보자, 그래서, 뭐 더, 있어?”

나 “아니면... 그 드라마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뭐 그런 거...?”

(또 다들 웃었다) 

친구 “야, 얘 아직 멀었다!!!”

친구 “아니, 너, 그렇게 연애하는데, 도대체 왜 사랑은 왜 드라마로 배워!!!”

(또 다들 웃었다) 

결국 이 대화는, 내게 드라마 좀 그만 보라는 친구들의 타박과 웃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Pierre-Auguste Renoir, Picking Flowers, 187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그래서, 도대체, 사랑이 뭔데...?” 


지금 내 마음은 내 질문과 같다. 결혼은, 고구려인처럼, 사랑해서 하는 데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심지어, 의도치 않게, 만 35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도 했다. 그런데, 지금 제일 문제는, 나는 솔직히,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선, 소개팅, 선개팅 등등을 하며 연애를 한 내가, 그 남자들과 결혼을 생각한 내가, 그런 내가 하기에 적합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데 결혼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던, 그 어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아마 “사랑이 뭔데?”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사랑은 총 쏘는 것보다 위험하고 뜨거운 것”이라고 해서 멋지다며 감동했었다. 드라마 <바람이 분다>를 보며, 역시, 사랑은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을 함께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 위험하고 뜨거우며 힘겨운 사랑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니, 나는 아니다. 나는 그런 극적인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친구들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드라마를 그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사랑을 정의해야 한다면, 이런 것 같다.

내게 사랑은, 위에 있는,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의 그림 <Picking Flowers>처럼, 누군가를 위해 꽃을 꺾어주는 그런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내게 사랑은,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의 그림과 그 제목 <Conversation In A Rose Garden>처럼, 함께 있는 게 그저 좋아서, 계속 같이, 그 꽃이 있는 공간에 머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말한 사랑이랑 비슷하다. 사랑 같은 거 없다면서도 굳이 말하면 편안함이라고 했던 바로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좌 Pierre-Auguste Renoir, Conversation In A Rose Garden, 1876, Private Collection

우 Pierre-Auguste Renoir, Le printemps ou la conversation, 1876,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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