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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Jun 28. 2019

#25 내게 딱 맞는 구두를 찾던 것보다, 치열하게!

내 이름이 쓰인 구두 같은, 내 사람을 찾을 때는 더 치열하게 고민하자.




나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 구두는 신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예쁜 구두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구두를 사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신지 않았다. 

사실 구두가 처음부터 잘 맞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예쁜 구두는, 대체로 예쁜 만큼, 아팠다. 게다가 대개, 좋은 구두일지라도, 처음에는 딱딱한 부분이 있어서 아프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처음에는 꽤 마음에 들어서 산 구두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아프면, 신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발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신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감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몇 번 신지 않은,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구두가 꽤 많아졌다. 쓰고 보니 새삼 더 감사하다.       


Andy Warhol, Golden Shoe (Julie Andrews Shoe), 1956, Christie's



아주 가끔 “나는 네 거야”라고 쓰여 있는 듯한 구두가 있었다.    

 

가끔 보자마자 “나는 네 거야”라고 쓰여 있는 듯한, 내 이름표가 붙여진 듯한, 그런 구두가 있었다.

매우 가끔이었지만,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드는 구두였다.

신었을 때도, 내 발에 딱 맞는, 말 그대로 “이건 내 거다”라고 생각되는 그런 구두였다.


앤디 워홀 Andy Warhol의 그림 속 구두처럼 모양도 마음에 들었고,

새로 산 구두인데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은 그런 구두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마음에 들었던, 그 구두만 신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그 구두와 비슷한 구두를 찾았다.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동안은 남들이 신는 구두와 비슷한 구두를 신었다.     


한동안 나는, 앞이 날렵한 스틸레토를 즐겨 신었다. 굽은 거의 10cm에 달했다. 

그 구두들은 마치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이런 게 전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발이 너무 아팠지만, 꾹 참고 계속 신었다. 

발에는 물집도 잡혔고 뒤꿈치가 까져서 피도 났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했다.


또 한동안은 리본이 달린 F사의 구두가 유행이어서 그 구두를 신었던 적도 있다.

남들이 신으니까 한 번쯤 신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을 하면서도 다른 친구들이 신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구두를 신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나는, 다시, 내가 좋아하는 구두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30대에 들어설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일을 할 때와 정장을 입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지 않았다. 

특히나 앞이 뾰족한 구두는 더욱 신지 않았다.

정장용 구두도 남들과 똑같은 것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는 굽이 낮은 플랫슈즈나 로퍼 등을 한 켤레 더 가지고 다녔다.     


나는 발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아무리 예쁘고, 아무리 좋은 구두라도 신지 않았다.

가능하면, 신었을 때, 내가 가장 편한 것, 그러면서도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샀다.

다행히도 어른이 된 덕분인지, 새 구두가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아프기는 했으나 그 이후로는 잘 맞았다. 

그러다 보면 구두가 빨리 닳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에 같은 색상으로 한 켤레를 더 살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구두를 고를 때, 매우 까다롭게 골랐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내 마음에 딱 맞는 그런 구두를 찾기 쉽지 않았다.




앤디워홀 휘트니미술관전시 http://blog.revealartfair.com/andy-warhol-whitney/


나는 잠시 잊었다. 

휘트니 미술관에 걸린 앤디 워홀의 구두 그림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구두는 많다. 

그러나, 내가 찾는, 내게 딱 맞는 구두는,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구두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너무 어렵다.

그래도 그 하나의 구두를 찾기 위한 시간이 있어 어떤 것이 내게 잘 맞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자를, 그러니까, 내 인연을, 찾아야 하는 순간도, 내게 딱 맞는 구두를 찾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 시간들도, 내가 배우자를 만났을 때 알아보기 위한 시간일 것 같다.

배우자를 찾으려고 하던 그 순간에, 나는, 내게 딱 맞는 그 구두를 고를 때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배우자를 만나야 순간이 왔을 때는, 적당한 사람을 찾으려 했다. 적당한 사람이란, 아마도 내가 한때 신었던, 남들이 신었던 구두와 비슷한,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제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보자마자 “나는 네 거야”라고 말하고, 

신었을 때는 “이건 내 거다”라고 더 확신을 주었던, 그 구두처럼, 

“내 사람이다”라고 확신하게 되는, 그리고 편안한,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새 구두처럼, 처음에는 아플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하기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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