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테오 Jun 29. 2019

#26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주말에는 쉴까 합니다...

사회화된 나의 취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평일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생명수이다. 


나는 불면증이 있다. 심지어 카페인에 약하다. 낮 12시 이후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는 생명수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어지간히 추운 겨울에도 무조건 아이스다.           



평일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유는 많다.     


졸리다가도 눈이 번쩍 뜨인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물론 카페인 덕분이 아니라 플라세보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녹아도 마실 만하다.     


남들이 사줄 때는 더욱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저렴하다. 핫과 아이스의 가격이 차이가 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거의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빨리 나온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할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한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내가 사회생활을 매우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한 가지 메뉴로 통일화, 획일화를 외치는 “꼰대”가 된 것 같다.

현실적으로 내 입장은 누구에게 강요할 만한 상황은 못 된다.      



내게 평일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취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무난하고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이고 싶은 그런 마음의 반영이었다.

사회생활로 만들어진, 획일화된 취향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그림 속에 있는, 똑같아 보이는 아이스크림처럼,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남들과 매우 같은, 매우 무난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Wayne Thiebaud, Untitled (Three Ice Creams), 1964, Private collection




주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각성제이다. 잠도 깨우고 축 처진 몸도 깨우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에 매우, 치열하게, 나태하고 싶다. 주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멀리 한다.  



        

주말에 허브차를 마시자 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잘 웃는 편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어금니를 깨물고 웃을 때도 있다. 내가 언제 진짜 웃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에 힘들기도 했었다. 이런 괴리감은 결국 불면증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덕분에 한동안 카페인이 없는 온갖 허브티를 마셨다. 

카페인이 없이도, 잠을 두세 시간만 자도, 인간이 꽤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주말에 선, 소개팅, 선개팅 등을 할 때면 허브차를 마셨다.

다들 내게 왜 커피를 안 마시냐고 물었다.

커피가 아닌 허브차를 마시는 나를, 매우 이상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특이하게 여겨지게 된 건지 모르겠다.

커피가 대중적이기는 하다.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그런데 꼭 커피를 마실 필요도 없다.

커피는 하나의 기호식품일 뿐이지 않나?    


초면인 맞선남과 주말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회생활의 연장선 같았다.

나를 철저하게 드러내지 않는 획일화된 취향의 연장선 말이다.

내게 주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은, 

샛노란 원피스를 입은 채, 누구나 한 벌쯤 가지고 있는 검은 코트로, 나를 감춘 그런 느낌이었다.        




Wayne Thiebaud, Clown Cones, 2000, Private collection



그럼에도, 한동안, 나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낮이든, 밤이든, 주말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내 취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왜 마시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           


주말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는, 내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싶었다.


내가 허브차를 마셨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특이하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특이해 보이는데, 허브차를 마시니 그 특이함과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내 본모습을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쉴까 한다. 

생각해보니 주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쉰 지 좀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AB형이냐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5 내게 딱 맞는 구두를 찾던 것보다, 치열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